필요할 땐 '나 몰라라'…규제 당국 책임 회피 논란[코인 잡는 킬러규제]②
고파이 엮인 고팍스 VASP 문제도 6개월째 답변 無
[편집자주]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휘청이고 있다. 지난 2017년 말 '비트코인 붐'을 기점으로 수많은 가상자산 기업들이 생겨났지만, 규제 불확실성과 '그림자 규제'에 살아남은 기업은 많지 않다. 그동안 가상자산 및 블록체인 기술은 투자처를 넘어 신산업 분야인 '웹3'로 발전했다. 이에 가상자산 시장에 강경했던 일본, 홍콩 등은 규제를 풀며 신산업 발전을 장려하고 있으나, 국내 당국은 여전히 규제에만 치중해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스1>은 총 4회에 걸쳐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킬러 규제' 문제를 들여다본다.
(서울=뉴스1) 김지현 기자 = 금융당국은 그간 비대해진 가상자산(암호화폐) 산업을 소화할 관련법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도 '그림자 규제'를 통해 가상자산 산업을 규제해왔다.
내년 7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시행 전까지는 명확한 규제 기준이 부재한 업계 환경도 문제지만 이번 '하루인베스트·델리오 사태' '고파이 사태'를 통해 그림자 규제의 주체인 금융당국의 모호한 판단 기준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루인베스트에 이어 델리오까지 국내에서 씨파이(중앙화금융서비스) 성격을 가진 예치 서비스들이 잇따라 출금 중단 사태에 휘말린 가운데, 업계에서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가상자산의 예치업에 대해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아 둔 탓에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FIU가 공개한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에 대한 정보공개 현황'에는 가상자산 예치 및 랜딩,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서비스, 대체불가토큰(NFT) 매매 등에 대해서는 '특금법'상 신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이에 FIU는 VASP와 관련해 여전히 거래소에 해당하는 가상자산 거래업자, 가상자산 보관 및 관리업자, 가상자산 지갑 서비스 업자로 사업자를 분류한 뒤 VASP 수리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예치업자에 대해서는 이미 신고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못 박아둔 만큼, 하루인베스트와 같이 고객의 자산을 예치하고 이를 운용하는 업자의 경우에는 당국의 규제 잣대에 적용되지 않으면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국내 가상자산 규제 적용을 받지 않았던 하루인베스트이지만, 이들은 델리오와 같이 유사한 유형의 사업 구조를 가졌던 국내 가상자산 서비스들과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델리오는 고객의 일부 자금까지 VASP를 획득하지 않은 하루인베스트에 맡기는 등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면서 사업을 진행해왔다.
매우 유사한 서비스 유형을 지녔지만 한쪽은 VASP를 획득한 사업자, 다른 한쪽은 VASP를 획득하지 않은 사업자란 기형적 구조를 당국이 방치했다는 점에서 책임 회피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델리오와 관련해서는 당국이 이들의 VASP 획득을 가상자산 보관 및 관리업자로 허가했는데, VASP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업의 구조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실행하지 않았다는 비판론까지 제기된다.
국내에서 블록체인 사업을 꾸리고 있는 한 업체의 대표는 "델리오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VASP까지 받은 업체"라며 "델리오는 이를 통해 '국내 유일 가상자산 예치 사업자'라며 홍보해왔다"라고 말했다.
대표는 "델리오의 홈페이지만 들어가봐도 가상자산의 예치와 운용 관련 내용이 있는데, 당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며 "사실상 보관·관리로 VASP를 획득한 델리오의 예치 사업도 허용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델리오 투자자 중 'VASP 획득 업체'라는 델리오의 타이틀을 믿고 다량의 자산을 맡긴 이들도 대다수다. VASP 획득이란 곧 당국이 만든 '허들'을 통과했다는 의미로 해석되다보니 당국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투자자들이 델리오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다.
FIU가 '가상자산 예치업자'로 델리오에게 VASP 획득을 허가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사업 구조에 대한 파악이 이뤄졌다면, 델리오가 '단순히 고객들의 자산을 보관 및 관리하는 업체가 아니다'라는 점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당국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당국의 책임론은 델리오 사태뿐만 아니라 '고파이 사태'를 통해서도 불거지고 있다.
올해 1월 글로벌 거래소 바이낸스는 'FTX 사태'로 충격을 받으면서 원금 및 이자 지급이 어려워진 고팍스에 손을 내밀었다. 이 과정에서 바이낸스는 고팍스의 인수를 진행했고, 고팍스는 그에 따른 변경된 VASP 내용을 지난 3월 당국에 신고했다.
그러나 당국은 6개월 여가 지난 시점까지도 고팍스의 VASP 변경 신고 내용에 대한 답을 미루고 있다. 통상 당국은 변경신고서 접수 후 45일 내 수리 결과를 발표해왔는데, 고팍스의 변경신고서의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수리 여부를 미루고 있다.
고팍스의 VASP 변경신고서 수리 여부는 거래소 운영 문제를 넘어서 '고파이의 지급 여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당국의 책임 회피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앞서 바이낸스는 고파이 자금의 100% 상환을 위해서는 FIU로부터의 VASP 변경 신고 수리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당국이 고팍스의 VASP 변경신고서에 대한 수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수리된 기준이라도 명확히 제시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고팍스의 VASP와 관련한 당국의 답변은 여전히 나오지 않으면서 피해를 받고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당국의 책임 회피 논란은 거세지고 있다.
mine12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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