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상인 오디션, 비법 전수, 특제소스 개발... "우리 시장은 365일 이벤트 중" [우리동네 전통시장]
먹거리 개발·청년상인 육성 경연 개최
고객 클래스, 지역축제 덕분 단골 늘어
차별화 소스 개발, 신메뉴도 출시 준비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자, 이제 참가자들은 요리를 시작해 주세요!”
TV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들을 법한 사회자 멘트가 지난달 21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도깨비시장 인근 공유주방에 울려 퍼졌다. ‘예비 셰프’ 네 팀이 일제히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끓이고 굽고 지지고 볶는 손놀림에 긴장감이 넘친다. 경연장에 요리 과정이 생중계되고 익살맞은 진행까지 곁들여지니 진짜 예능 프로그램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베테랑 시장 상인들과 유명 셰프, 컨설팅 전문가가 맛을 심사했다. 레시피와 식재료 관리, 수익성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졌다. 참가자들은 요리할 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만장일치 우승자는 도깨비 뿔이 달린 다코야키를 선보인 경기대 외식조리학과 4학년 이자연ㆍ이지원씨. 이들에겐 도깨비시장에서 3개월간 장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동갑내기 두 친구는 “멋진 장사꾼으로 성장하겠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춘선 숲길 조성, 시장은 기회를 잡았다
이날 행사는 시장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를 개발하고 청년상인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청년상인 콘테스트’다. 지난해 처음 개최했는데 당시 우승 메뉴인 크레이프와 전통시장의 이색적 조합으로 시장 고객들한테 인기를 끌었다. 다코야키 팝업스토어는 레시피 수정과 영업 교육 등을 거쳐 이달 중순 문을 연다.
요즈음 도깨비시장은 이름 그대로 도깨비처럼 톡톡 튀는 프로그램들로 지역사회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죽 뻗은 380m 골목을 따라 114개 점포가 옹기종기 늘어선 작은 동네 시장이지만, 주민들에겐 문화센터이자 사랑방으로, 방문객들에겐 문화관광지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박용선(66) 상인회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상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다”며 “대형마트와 백화점의 공세 속에 살아남으려면 시장이 변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쇠락해 가는 시장의 앞날을 고민하던 즈음, 시장과 맞닿은 경춘선이 2010년 폐선됐다. 철길을 따라 ‘경춘선 숲길’이 조성됐고,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들었다. 시장엔 새 고객을 끌어들일 기회였다. 특히 공릉동은 마을공동체 활동이 활발한 곳이라 지역사회와 협업 가능성도 무궁무진했다. 상인회는 정부 지원사업에 응모하고 시장육성사업단을 영입했다. 상인들의 추진력과 사업단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결합하자 시너지가 폭발했다.
시장과 지역공동체, 협업으로 상생한다
도깨비시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행사가 열린다. 시장 상품과 지역 수공예품이 어우러진 플리마켓, 상인이 강사로 나서 맛의 비법을 전수하는 요리 클래스, 반대로 상인이 지역 예술가들에게 공예를 배우는 상인 클래스, 대학이 참여하는 청년 축제, 시장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 줍기) 등 콘텐츠가 다채롭고 풍성하다. 올해 5월엔 지역 수제맥주 양조장과 도깨비시장 푸드트럭이 함께한 ‘노원구 수제맥주 축제’가 열려 이틀간 5만 명이 다녀갔다. 임병수(37) 사업단장은 “작지만 알찬 사업을 꾸준히 하다 보니 최근엔 외부에서 먼저 협업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행사를 통해 시장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고스란히 단골 고객이 됐다. 40년 전통 방앗간 주부상회 사위인 김종호(44) 대표는 “장모님이 요리 클래스에서 1시간 만에 만드는 마늘고추장 비법을 가르쳤는데, 수업 참가자들이 고추장 재료를 사러 자주 들른다”며 웃음 지었다. 수제맥주 축제에서 맛본 안주를 찾아오는 이들도 많고, 시장 김치는 해외로도 배송된다. 주민 유명순씨는 “물건 질이 좋고 가격이 싼 데다 상인들이 정직하게 장사하니 마트에 갈 일이 없다”며 “여러 행사들 덕분에 시장에 활기가 생겼고 장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말했다. 가게를 비우기 힘든 상인들도 짬을 내 공예를 배우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최근엔 추석을 앞두고 보자기 선물 포장 수업을 들었다.
특제소스 개발, 차별화로 승부한다
도깨비시장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도깨비시장의 정체성이 담긴 자체 상품 ‘불도깨비소스’까지 개발했다. 도깨비는 팥을 싫어한다는 전통설화에서 착안해 ‘팥메주’ 제조 특허를 보유한 충북도농업기술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릉동 기반 외식 전문가와 함께 무수한 연구 끝에 팥메주를 활용한 매운맛 소스를 완성했다. 임병수 사업단장은 “불도깨비소스는 혀가 불타는 걸 느끼면서도 도무지 끊을 수 없는 강렬한 맛”이라고 자신했다.
7월엔 상인을 대상으로 ‘불도깨비소스 신메뉴 콘테스트’를 열었다. ‘맵부심’을 자랑하는 주민들의 깐깐한 평가를 거쳐 최종 선정된 4개 음식이 조만간 메뉴판에 올라간다. ‘매콤 토스트’ 출시를 앞둔 2개월 차 청년사장 임태윤(21)씨는 “손님들 입맛을 연구하며 손님과 가족이 돼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도깨비시장엔 임씨 같은 청년상인이 늘고 있다. 방앗간과 김치가게, 상인회장이 운영하는 야채가게에서도 대를 이어 젊은이들이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박용선 상인회장은 “도깨비시장이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를 이어 뜻을 펼치는 공간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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