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 "흥행 소중하지만 관객들께 어떻게 각인되는지가 더 중요" [인터뷰]

모신정 기자 2023. 9. 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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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수' 연출 맡아… '모가디슈'이어 또 다시 흥행 성공
스릴감 넘치는 액션신·워맨스·코믹신 다채롭게 배치해 다양한 세대 관객 사랑 받아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류승완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밀수'가 개봉 36일만인 지난달 30일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올해 개봉작 중 500만 관객을 넘어선 한국 영화는1068만 명이 관람한 '범죄도시'와 '밀수' 딱 2편뿐이다. 한국 영화 위기론이 언급되는 시기 귀중한 500만 돌파가 아닐 수 없다. 

영화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김혜수, 염정아 두 명의 투톱 주연에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김종수, 김재화, 박준면, 박경혜, 주보비 등이 주연을 맡았다. '밀수'의 500만 돌파 배경에는 생계를 위해 밀수에 나서는 해녀들이라는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세대의 관객들을 견인할 수 있는 대표 배우들의 캐스팅, 류승완 감독 특유의 스릴과 서스펜스 넘치는 액션신과 장기하 음악감독이 선정한 추억의 OST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류 감독은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저는 질문을 던지고 제안만 했을 뿐 여백은 배우들이 다 채워줬다. 해녀들이 활극을 벌인다는 새로운 소재에 끌려 연출에 나섰다. 관객들께 새로운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며 "우연치 않게 언젠가부터 흥행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되어버렸는데 저는 흥행의 숫자보다 영화를 관람하고 난 관객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 그리고 그분들 마음속에 이 영화가 얼마나 각인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깊이 각인된 영화는 당대에 흥행을 못해도 언젠가 평가를 받기에 그걸 보고 간다"며 연출에 나서는 일관된 자세에 대해 밝혔다.  

- 여성 배우 투톱의 영화라는 점이 가장 큰 관심거리다. 제작 과정에서 부담은 없었나. 

▶ 제가 오래 전 두 여성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피도 눈물도 없이')를 만들어봤다. 흥행은 완전히 실패했다.(웃음) 제가 뭔가 하고자 할 때 흥행도 생각하긴 하지만 그냥 제가 하고 싶으면 하는 편이다. 그러니 '밀수'도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모가디슈'도 아프리카에서 민간인들이 고립돼서 펼치는 이야기가 흥행 요소가 뭐 얼마나 있었겠나. 제가 우연치 않게 언젠가부터 흥행 영화를 만드는 감독처럼 되어버렸는데 저는 흥행의 숫자보다 영화를 관람하고 난 관객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반응 그리고 그분들 마음속에 이 영화가 얼마나 각인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깊이 각인된 영화는 당대 흥행을 못해도 언젠가 평가를 받기에 그걸 보고 간다. 

이 영화는 여성 투톱 영화인 것도 맞고 춘자와 진숙 둘이 리드를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엄진숙이라는 중력을 이끄는 한 캐릭터가 있고 그 주변 사람들이 변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상 활극에 가깝다. 해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을 해야 했고 여성들이 주요 배역으로 나와야 했다. 대본 골조상 두 친구 이야기였기에 어떤 계산도 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김혜수와 염정아가 떠올랐다. 김혜수와 염정아가 나온다면 안 볼 이유가 없잖나. 여성을 투톱으로 했다고 그 지점에서 굉장히 모험적 선택이었다고 봐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그렇게 모험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적당한 선에서 어떻게 좀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이다.(웃음)

- '밀수'를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영화 '시동' 제작 당시 우리 회사(외유내강)의 조성민 부사장이 군산에 촬영을 갔다가 그곳 지역 박물관에서 1970년대 군산 지역에서 밀수가 횡행했는데 해녀들이 거기에 가담했다는 짧은 사료 기록을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해줬다. 이런 소재로 뭔가 개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저 또한 이전에 '미스테리아'라는 장르 매거진에서 곽재식 작가의 여성 밀수단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것이 '밀수' 제작의 배경이다. 애초 연출하려는 생각은 없었는데 '모가디슈' 후반 작업 중 '밀수'의 초안 각본을 봤다. 그때 해녀들이 이런 활극을 벌인다는 건 어디서도 못봤던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아내 강혜정 대표와 조성민 부사장에게 '내가 연출하면 안돼?'라고 묻고 두 사람의 동의를 얻었다. 제가 본 적이 없다는 건 관객분들께도 새로운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의미이기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 '밀수'의 호텔 액션장면에서 조인성의 권상사와 박정민의 장도리의 액션신이 매우 인상적이다. 해당 액션 장면에서 각 배우에게 특별히 지시한 내용이 있다면. 

▶ 권상사의 액션은 멋과 쾌감이 넘쳐나는 장면이었으면 했다. 제가 영화를 만들면서 주요 배경을 가상의 지역으로 설정한 것이 '짝패'와 이 영화 두 개다. 이것은 곧 '장르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라는 안내 같은 거다. 저조차 대단한 액션 영화의 팬이어서 멋진 액션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관객들이 보실 때 액션의 동작이 화려하고 멋있어도 인물에게 몰입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권상사가 가지는 멋과 품위를 그 격렬한 상황 안에서도 보여줄 방법이 뭘까 고민했다. 그 여백은 조인성 배우가 다 채워줬다. 

장도리의 액션은 액션 설계부터 권상사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잖나. 장도리만의 매력을 보여줄 방법을 고민했다. 처절한 몸부림을 하면서도 권상사가 가지지 못한 활어같은 파닥 거리는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장도리의 액션은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 것 같지만 그런 장면들이 사실 그 부상 위험도 더 크고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디자인을 했으나 박정민 배우가 그 안에서 훌륭하게 해내줬다. 

- 권상사가 장도리 집단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춘자(김혜수)를 숨기는 신에서는 '베를린' 표종성(하정우)과 련정희(전지현)의 장면도 연상되더라. 권상사와 조춘자는 연인 관계가 아님에도 권상사가 신사도를 발휘하던데. 

▶ 권상사의 그 액션의 동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 기사도라는 것이 맞을 거다. 지금으로서는 사라져가는 태도이고 가치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것도 지금 시대에는 '그게 뭐냐'라고 이럴 수 있는데 오히려 둘의 로맨스 형성을 안 시켰다. 권상사의 태도는 명확하다. 동료이고 동지 관계다. 내 편인데 내가 더 세니 뒤로 숨게 해주겠다는 느낌이다. 전형적인 옛날 사람의 감성인데 둘이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큰 가치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춘자가 훗날 권상사를 다시 찾아오는 것도 의리의 감정이었다고 본다. 우리 영화속 관계들이 참 흥미롭다. 자신들의 성별을 넘어서는 위치에서 관계를 맺는다. 사실 어떤 설명도 없고 뉘앙스 정도인데 배우들의 눈빛 교환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찍으며 저도 반했다. 매일매일 감사했다. 

- 액션이 강하면서도 사회 정의를 중요시하는 메시지가 담기는 것이 류승완의 작품 특성 중 하나 같은데. 

▶ 제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마다 다 좋아하는 영화가 다르다. '베테랑'을 좋아하는 분들이 가장 많지만 '베를린'도 있고, '다찌마와리'도 있고 '주먹이 운다'도 좋아하신다. 제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지?' 싶을 때도 있다.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갈짓자 형태다. 액션을 많이 찍었지만 리얼 베이스 영화도 있고 판타지, 코미디도 있다. 어두운 작품도 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하면 제가 한 것으로부터 멀리 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가장 위험한 것은 성공을 재탕하는 것이다. 최근 '베테랑' 속편 촬영을 마쳤지만 강박적으로 속편을 만들지 않으려고 피해왔다. 

그런 밸런스가 저에게 중요하다. 관객들이 요구하는 익숙함과 새로움의 밸런스를 얼마나 잘 맟출 것인가가 중요하다. 어떤 성공적 작품을 재탕하거나 공식대로 만들면 한두 번은 어떻게 갈 수 있겠지만 서서히 침몰하는 거다. 실패를 하더라도 딱 한 걸음만 해야 한다. 매번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은 두렵지만 구력이 좀 쌓이고 성공도, 실패도 해보고 나니 '다음에 잘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든다. 

- 수영을 못하는 염정아, 물 공포증이 있는 김혜수를 데리고 해녀가 활약하는 영화를 찍었다. 

▶ 김혜수, 염정아 두 배우께 강혜정 대표가 연락을 해서 흔쾌히 사무실에 오셨다. 대본만 드리기가 뭐 해서 저희도 준비를 많이 했다. 준비한 해녀 영상과 바다 영상 등을 보여드리니 두 배우 다 막 감동한 표정으로 말을 못하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김혜수 선배는 물을 보고 공항이 온 거고 염정아 씨는 '나 수영 못하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거였다. 그 사실을 며칠 후 알았다. 두 분이 그날 집에 가서 통화를 하며 염정아 씨가 '언니, 수영 잘 하죠?'라고 묻더란다. 그 때 김혜수 배우가 '정아야, 나 전에 촬영하다 공항이 와서 아까도 공항 왔다'라고 이야기했다더라. 두 배우 모두 너무 심각한 상태지만 영화가 하고 싶어서 말을 못했던 거다. 염 배우가 알고 보면 되게 쿨한 사람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두 분이 생각하고 3개월 수중 훈련을 했다. 

김혜수 선배는 공항이 심했지만 수중 훈련을 해주는 대표님이 계속 캄다운시키고 심리적 안정을 시켜주시고 해녀 역 배우들도 응원 해주면서 극복을 하셨다. 김재화, 박준면은 수영을 잘 했지만 박경혜, 주보비 또한 전혀 수영을 못했더라. 캐스팅 당시에는 물개라고 했지만 알고 보니 물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두 배우도 잘 극복해줬다. 오히려 남자 배우들이 손해였다. 자기들은 산소통을 메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배우들은 산소통도 없이 저렇게 해내니 남자 배우들도 고생을 많이 했다. 

- '밀수' 속편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있나. 

▶ 현장에서 장난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것은 아니다. 80년대를 배경으로 무슨 일이 펼쳐질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었다. 

- 수조 세트에서 촬영한 장면과 바다에서 촬영한 장면 등 물을 배경으로 촬영을 많이 했다. 일반 세트 촬영과는 많이 다른 환경이었을텐데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나. 

▶ 바다에서 뭔가 찍을 수 있는 게 1년 중 며칠 안되더라. 예전에 '캐러비안의 해적'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와 식사할 자리가 있었는데 '바다에서 찍는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 양반이 씩 웃으며 '가급적 바다에 안가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 이 영화를 찍고 보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라. 저희가 촬영한 섬들이 남해 해상국립공원에 있는 곳이다. 멀기도 하고 또 배 위에서의 장면들을 찍어야 하다보니 거기까지 가는 물리적 시간이 있잖나. 

스태프들은 쾌속정을 타고 빨리 가면 되지만 배우들은 통통배에 타고 가야만 한다. 스태프들은 근처 섬에서 코로나 때문에 고립되기도 하고 며칠 동안 그 배가 섬에 가는 장면을 드론을 맞춰 찍기도 했다. 보통 배 장면을 찍을 때는 짐볼 위에 배를 띄워놓고 땅에서 찍기도 하는데 저희는 배우들이 물 속에 뛰어드는 장면이 많았기에 경기도 고양시에 대형 야외 수조 세트에 배를 옮겨 놓고 야외에서 찍었다. 포크레인으로 파도를 만들어서 그 장면을 찍고 섬과 합성을 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3~4커트 정도가 자연광의 방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바다의 날씨는 하루 동안에도 구름이 꼈다가 해가 비췄다가 여러 번 바뀐다. 바다에 간다고 해서 좋은 소스를 찍을 보장이 없었다. 수중 장면은 정말 저희가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미술팀의 고생도 많았다. 수초 같은 것도 다 미술팀에서 작업한 거다.   

- 한국 영화 위기를 이야기하는 시대가 됐다. 대표 흥행 감독으로서 한국 영화 시장의 활성화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것 같다. 

▶ 그렇지는 않다. 창작자에게는 자유로움이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제 영화를 봐주시기에 다음 작품을 찍을 수 있는 거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 영화를 잘 만드는 것이다. 문화 산업에서 제가 어떤 발언권을 가진다던가 어떤 정책을 내놓고 한다는 건 좀 이상하다. 어느 순간 딜레마이 빠질 거다. 제가 창작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편인데 제가 뱉은 말이 저의 족쇄가 되고 제가 그것 때문에 하고 싶은 작품을 못하게 되고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좀 위험한 것 같다. 그런 걸 하시는 분들은 따로 계신 것 같다.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열심히 할 뿐이다. 

- 해녀들과 장도리 일파가 펼치는 수중 액션신도 영화의 백미다. 

▶ 제가 영화 만들기 전에는 '항상 뭔가 한번 해보고 싶어'가 먼저 정해졌었는데 이번에는 막연하게 '뭔가 있을 것 같아'로 시작을 했다. 계속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무술 감독님과 상의하며 '어떤 게 있을까' 고민했다. 제가 찾은 키워드는 물 속은 중력의 지배를 덜 받는다는 거였다. 지상에서의 액션은 칼, 총, 주먹으로 하는 모든 싸움을 해봤잖나. 그리고 그 움직임에는 어떤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면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액션을 할 때는 카메라가 자유롭지않나. 물 속에서는 중력의 지배는 덜 받지만 물의 저항을 받으니 속도가 느려진다. 그걸 역으로 생각하면 되겠더라. 느린 상태가 어떤 서스펜스를 일으킬수 있겠더라. 남성과 여성이 육체적 대결을 벌인다 했을 때 물밖에서 아무리 강한 남성이라도 물에 익숙한 해녀들을 이기기는 어렵지 않나. 그런 장르적 세팅이 가능했다. 무술감독님 뿐만아니라 국내 싱크로나이즈 국가대표 김희진 코치가 합류해줘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액션을 만들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신이 춘자와 진숙이 크로스 하는 장면이다. 

- '밀수'는 극장에서 관람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영화다. 극장에서의 영화 체험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요즘 굉장히 중요한 화두 같다. 저는 옛날 사람이기에 영화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제대로 설치된 음향 시설 그리고 여러 사람이 함께보는 게 영화라고 생각한다. 같이 웃고 울고 또 아무 소리가 없을 때 함께 긴장하기도 하잖나. 그런데 영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

제가 '극장에서 관람을 부탁드린다'고 하는 것은 만든 사람의 입장이다. 저는 대형 스크린과 스피커 시스템을 기준으로 OK사인을 내리고 극장에서 기술 시사를 한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연기할 때도 대형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여질까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현대 관객들은 어린 시절부터 휴대폰으로 영상 매체를 보고 자랐다. 제 주위 어린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그렇기에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가급적이면 만든 사람들의 의도가 잘 구현될 수 있는 플랫폼을 선택해주시기를 바라는 거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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