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기 없는 첫발 뗀 연금 개혁, 실행까지 흔들리지 말아야
정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가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 받는 시기도 늦추는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5~15년간 매년 올려 12~18%로 높이고, 연금 개시 연령도 66~68세로 늦추자는 것이다. 여기에 기금 운용 수익률을 0.5%p 혹은 1%p 올리면 연금 고갈 시기가 최대 2093년까지 연장되는 시나리오다. 복지부는 제시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정부안을 마련해 오는 10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연금 생존을 위해 같이 고통을 분담하자며 개혁안의 첫발을 뗀 것이다.
국민연금은 현재대로 두면 2055년이면 고갈된다. 그때부터 수령 대상자가 되는 1990년대생이 연금을 받으려면 연금 가입자들이 수입의 30%가량을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젊은 세대가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전재정포럼의 조사에서 청년 세대 응답자의 67%는 국민연금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라고 응답했다. 돈을 열심히 냈는데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면 거부감과 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뻔히 고갈이 예상되는데도 집권 5년 내내 국민연금 개혁을 외면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11월 국민연금제도 발전위와 복지부가 보험료를 더 내는 내용의 개혁안을 보고하자 “보험료율 인상은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며 걷어찼다. 오히려 국민연금 개편안 정보 유출자를 색출한다며 복지부 간부들 휴대폰을 뒤지기까지 했다. 문 정부가 손을 놓는 바람에 국민연금의 고갈시점은 2년 앞당겨졌고, 보험료 인상 부담은 26% 늘었다. 비겁한 국가 지도자의 태업으로 후임 정부와 국민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국민에게 부담을 더 질 것을 요구하는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늘리기 위해 소득 대체율을 높이자는 주장은 박수를 받지만, 이를 위해 그만큼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 수령도 늦추자는 ‘쓴 약 처방’은 받아들기 쉽지 않다. 일부 위원이 사퇴하는 등 소득 대체율 인상 논의가 이번 보고서에서 빠진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금 소진을 늦추는 게 무엇보다 급하다는 재정계산위의 판단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정부는 연금 운용 부문을 떼 내 공사로 만들자는 제안을 포함해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방안을 담아야 한다.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이 늦어지는 만큼 정년 연장 논의도 임금 유연화 등과 묶어 서두를 필요가 있다.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설득하는 작업도 따라야 한다. 윤 대통령은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민연금 개혁은 국가를 위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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