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가 끼지 못하게 막아야 일이 된다는 걸 보여준 교권 운동
여야가 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교원 지위법’ 등 교권 보호 관련 법안 4개를 모처럼 합의 처리했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 학대로 보지 않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을 교권 침해 유형에 추가하고 학교 민원 처리는 학교장이 책임지는 내용 등이다. 법안 상당수가 서이초 교사 극단적 선택 이후 발의되었는데 50일도 안 돼 소위를 통과했고 전체 회의와 본회의도 곧 통과할 예정이라고 한다. 신속한 여야 합의와 법안 처리가 이례적이다.
교사 사망 사건의 충격이 컸던 탓도 있지만, 교권 회복 운동을 주도한 세력이 ‘탈(脫)정치’를 원칙으로 내세운 단체였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단체는 교사 간 수업 자료 공유 커뮤니티로, 활동 시 일체의 정치색을 배제한다. 주말마다 한 달 넘게 수만 명이 참석하는 집회를 열면서 정치적 구호나 세 과시용 깃발을 허용하지 않았다. 전교조에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가만히 있어 달라”고 했다. 집회 비용도 갹출해 쓰고, 예정된 시간이 끝나면 쓰레기를 거둬 가 경찰들이 “이런 집회만 다녔으면 좋겠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만약 이 운동을 교총이 주도했다면 민주당이, 전교조가 주도했다면 국민의힘이 반대했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탈정치를 원칙으로 내세우니 정부, 여야 상대 협상력도 커졌다. 교육부는 교권 회복 대책을 전교조나 교총이 아니라 이 단체와 주로 논의했다.
대한민국은 갈등을 풀고 합의를 끌어내는 데 익숙지 않은 나라다. 그 일을 해야 할 정치권이 갈등을 확대, 재생산해 정쟁에 이용한다. 민주당은 최근 화물연대 파업, 대우조선해양 파업 등에서 불법 행위를 감싸고 조장했다. 2012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는 좌파 단체들과 ‘희망 버스’ 수백 대를 몰고 가 시위를 벌여 회사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대형 참사도 상대 공격 소재로 삼는다. 세월호 참사는 진상 조사를 9번 했지만, 해난 사고는 도리어 늘었다.
이번 교권 회복 운동은 정치가 끼지 못하게 막아야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여야 모두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바란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