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13] 월남사(月南寺)의 차(茶)맷돌
전라도는 어떤 땅인가? 어느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통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의(衣)와 주(住) 보다는 식(食)의 비중이 높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사람의 팔자와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요가의 대가 석명(石明) 선생은 ‘시장에 갔을 때 그 사람이 어떤 식재료를 사는지 관찰하면 그 사람의 기질과 다가올 질병의 종류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필자에게 여러번 강조한 바 있다.
전라도 음식의 특징은 해산물 요리, 즉 시 푸드(sea food)에 있다. 시큼한 맛을 내주는 식초와 초장을 넣고 버무린 회무침 요리를 먹을 때 나는 전라도를 느낀다. 서대 회무침이 그렇다. 홍어 무침도 그렇고, 목포 인근 바다에서 잡히는 민어회와 민어탕도 전라도 해산물 요리를 대표한다. 이러한 시 푸드의 중심지가 영산강 하구이다. 삼국시대 이전 고대부터 바다의 해산물과 나주 들판의 곡식을 교환하는 물류 루트가 영산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 해상 민족의 음식이 전라도 음식의 정체성이다.
기원전부터 영산강 하구를 드나들던 뱃사람들의 이정표가 되었던 산이 바로 해발 800m 월출산(月出山)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영산강 하구를 드나들던 뱃사람들에게 월출산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은 하늘에서 비춰주는 거대한 서치라이트였던 셈이다. 월출산과 보름달은 등대 구실을 했다. 월출산은 산 전체가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기도발이 잘 받는 영험한 산이기도 하였다. 월출산 구정봉(九井峰)은 선사 시대부터 접신(接神)과 신비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 지맥이 내려온 곳에 고려 시대 월남사(月南寺)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 불교의 정통파 선풍인 화두선(話頭禪)의 교과서가 ‘선문염송(禪門拈頌)’인데, 이 교과서의 저자 진각혜심(1178~1234) 선사의 비문이 있는 절이다.
고려 시대 월남사 승려들은 참선을 하면서 차[茶]를 즐겼던 모양이다. 이 절에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차맷돌[茶磨]이 발견된 것이다. 곡식을 가는 일반 맷돌에 비해서 그 크기가 반절이나 될까. 차맷돌은 단단하게 덩어리로 된 떡차를 부수어서 가루로 만들기 위한 용도였다. 맷돌로 갈아낸 가루를 뜨거운 물에 넣고 우려서 먹었다. 아니면 한번 솥에 쪄서 말린 찻잎을 다시 가루로 만들기 위해 차맷돌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천년간 차 문화가 이어져온 강진 월남사에서 엊그제 학술 발표를 하다가 전라도 풍토와 차맥(茶脈)의 뿌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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