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푸틴의 주문 목록이 김정은에 전달됐다… 북·러의 위험한 군사 밀월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23. 9.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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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국방장관 평양 방문, 탄약·포병장비 등 무기 거래 확대 시도
김일성, 스탈린에 전차 지원받아 남침… 지금은 푸틴이 김정은에 요청
북·러 무기 거래는 동북아 안보 위협… 한·미·일 협력이 효과적 대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7월 26일 평양 ‘무장 장비 전시회’에서 세르게이 쇼이구(앞줄 왼쪽) 러시아 국방 장관에게 설명을 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일본의 북한 전문가인 에야 오사무(惠谷治, 1946~2018)씨는 1998년 도쿄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북한 경제를 4중(重)경제라며 북한 정권의 돈줄을 분석했다. 북한 경제는 내각의 제1경제, 군수 경제인 제2경제, 김정은의 궁정(宮庭) 경제인 제3경제, 마지막으로 장마당 시장경제 등 4바퀴로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이 중 궁정 경제와 군수 경제가 북한 정권을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수령의 비자금 조달을 위한 궁정 경제(court economy)는 노동당 39호실이 담당한다. 1970년대 중반 조직된 39호실은 김일성, 김정일 등 김씨 일가의 외화벌이를 총괄한다. 20여 곳의 해외 지부와 국영 기관을 운영한다. 과거에는 궁정 경제가 4중 경제 중에서 가장 비중이 컸으나 2012년 김정은 집권 이후 제2경제가 빠르게 증가해 30%를 상회하며 제2경제위원회가 맡고 있다. 반대로 내각과 장마당의 민수(民需) 경제는 점점 쪼그라들어 40% 미만이다. 식량이 부족하여 아사자가 발생하는 등 인민들이 의식주 부족에 허덕이는 이유다.

일찍이 일본의 북한 전문가들이 북한의 무기 개발과 거래 등 국가 기밀 사항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양이 일본 조총련을 통해 신무기에 들어가는 각종 센서, 회로 등 전자 부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세미나 이후 오사무씨와 소통하며 일본 측 자료를 확보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서 제2경제위원회 산하에 항공우주 산업을 총괄하는 8총국을 신설했다. ICBM 등 각종 미사일 개발을 전담하기 위해서다.

제2경제위원회는 산하 용악산, 부흥무역, 창광무역, 연합무역 등 무역회사를 통해 홍콩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돈줄의 거래 통로를 마련했다. 용악산과 부흥무역은 러시아와, 창광무역은 중동을 주요 무대로 활동하였다. 연합무역은 미사일 부품과 기술의 수입을 담당하였다. 특히 잠수함과 전차 등 무기 제조에 필요한 집적회로(IC) 기판(基板)과 미사일 유도 시스템에 사용되는 스펙트럼 분석기를 일본에서 조달하였다. 일부 제품은 수화물로 위장하여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운반하였다. 북한 기업과 거래했던 조총련계 회사는 도쿄, 오사카, 니가타 등지에서 한때 약 30소에 달했다. 조총련을 통한 신무기 부품 조달은 2006년 1차 북핵 실험 이후 발동된 유엔 대북 제재 11건으로 한계에 도달했다. 신무기 부품 조달 루트는 미국의 감시가 미흡한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 및 이란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그래픽=이철원

평양시 강동군에 위치한 제2경제위원회는 우리의 기재부는 물론 국방부, 방위사업청 및 전체 방산 업체 등이 결합된 무소불위 부서다. 노동당 군수공업부 직속 기구로 산하에 160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무기 수출을 통해 획득한 외화로 외국 신무기를 사들여 철저하게 분석도 한다. 지난해 북한은 100발 이상 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부당한 무기 판매를 통해 얻은 이익을 핵미사일 프로그램에 재투자하고 있다. 3개월 동안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두 차례 실패하고 10월 재발사를 선언하는 이유는 제2경제의 금고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수 산업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각종 거래를 확대함으로써 대목을 맞고 있다. 지난 7월 전승절 행사를 빌미로 김정은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을 평양 ‘무장 장비 전시회-2023′에 초청하여 600㎜ 초대형 방사포, 미국이 보유한 정찰기 RQ-4 글로벌호크와 모양이 비슷한 전략무기 정찰기 및 무인 공격기 등 최신 무기를 과시하며 세일즈에 나섰다. 미 백악관은 김정은과 푸틴이 친서를 교환하며 무기 거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과거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사정하여 무기를 구매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김일성은 6·25 남침을 3개월 앞둔 1950년 3월 소련이 약 1억3000만루블어치 무기를 제공하면 그 대가로 총액 1억3305만루블 상당의 금 9t, 은 40t 및 우라늄이 함유된 희귀 광물인 모나자이트 1만5000t을 인도하겠다고 사정하였다(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 2023). 당시 북한이 자체적으로 생산 가능한 무기는 7.62㎜ 기관단총에 불과했다. 결국 김일성은 당시 최강의 소련제 T-34 전차 242대를 지원받아 남침을 감행했다. 지금은 모스크바가 평양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묘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지난 26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함께 무장장비전시회장을 찾았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뉴스1

김정은은 지난달 2박 3일간 다수 군수 공장을 돌아보며 ‘국방 경제 사업’의 강화로 무기와 군수 물자의 대량생산을 강조했다.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만큼 수출용 무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다. 24시간 공장을 가동하고, 러시아의 주문 목록이 북한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구소련에서 사용했던 표준형의 보병 및 포병 장비와 탄약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야전에서 가성비가 높은 무기들이다. 북한의 지대공(地對空) 미사일(SA-5)은 부품 상당수가 러시아제여서 무기 호환성이 높다.

북한은 보유 중인 재래식 무기들을 러시아에 넘기고 원유, 각종 신무기 부품 및 식량 등과 현물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제재로 달러와 유로화의 결제는 어렵고 루블화는 용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기존 노후 무기들을 실속 있게 정리하면서 신무기 개발에 나서는 등 일거양득이다.

북한의 수출용 무기 대량생산은 동북아는 물론 인도·태평양 지역에 안보 불안 요인이다. 이제 북한의 군수 산업과 군사적 위협은 한국 단독으로는 대응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북·러 간에 무기 거래는 단순 군수품을 넘어 북한군의 약점인 전투기 및 각종 미사일 무기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동북아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평가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만남이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이다. ‘언제든지(whenever)’, ‘어디서든지(wherever)’, ‘무엇이든지(whatever)’ 3국 간 협력이 가능한 ‘핫라인 구축’은 동북아 현실주의 국제정치에서 불가피하다. 북·러 간에 확대되는 군사협력은 동북아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고 우리 대응 중의 하나가 한미일 3국 간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지도를 짚어가며 점령훈련을 하는 상황에서 한·미·일 공약보다 효과적인 정책 대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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