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남조선 괴뢰” 친북행사 간 국회의원 의전 챙긴 외교부
무소속 윤미향 의원은 지난 1일 일본 도쿄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주최한 관동(關東·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에 참석했다. 조총련은 북한을 조국으로 여기는 단체이며, 한국 대법원으로부터 ‘반국가단체’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도 2020년 김정은에게 ‘노력 영웅’ 칭호를 받은 허종만 의장 등 조총련 지도부가 참석했고, 한 간부는 우리 정부를 ‘남조선 괴뢰 도당’이라고 지칭했다.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윤 의원에게 주일 한국대사관은 입국 수속을 지원하고 공항~숙소 간 차량까지 제공했다. 외교 활동을 위해 파견돼 있는 대사관 직원들이 국회의원의 ‘비서’ 노릇을 한 것이다.
윤 의원이 입국한 하네다공항부터 도쿄 시내 숙소까지는 차로 약 30~40분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를 타면 7만원, 지하철을 타면 1만원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다. 윤 의원실은 국회 사무처를 통해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윤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고맙게도 대사관에서 공항에 나와 숙소까지 데려다 주었다”며 “그 외 일정은 모두 제가 직접 진행했다”고 했다. 또 자신의 행사 참석에 대한 비판을 ‘색깔론’으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3일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단체와 어깨를 나란히 했는데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윤 의원의 제명을 요구했다.
오래전부터 국회의원들은 해외 출장을 갈 때마다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재외공관의 의전을 받는 것을 당연시해왔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의전 중독’이란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여기에 정치인들에게 잘 보이려는 외교관들의 과잉 의전도 악순환을 부추겼다. 현지 활동보다 한국에서 온 손님과의 ‘인증샷’을 소셜미디어(SNS)에 훈장처럼 올리는 대사들도 있고, 주재국을 찾은 고위급을 의전으로 감동시켜 훗날 인사가 잘 풀렸다는 무용담(?)도 종종 회자된다. 요즘도 유럽에 있는 한 대사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주재국이 ‘환승 허브’로 떠오르자 한국 손님 맞이에 분주하다고 한다.
외교부는 윤 의원 방문이 논란이 되자 2일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해오고 있는 시점에서 조총련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국회가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한 것이고 모든 일정을 공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옥석을 가려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해명이다. 외교부는 올해 6월부터 야당이 후쿠시마를 방문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결과를 부정하고 도쿄전력에 문전박대를 당하는 ‘자해 외교’를 할 때도 편의를 제공했다.
하지만 외교 활동 하기에도 바쁜 재외공관의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언제까지 이런 악습에 낭비할 수는 없다. 이번 기회에 외교부는 아예 재외공관의 국회의원 지원 폐지 방침을 검토하길 바란다. 정말 국익을 위한 활동이란 것이 사전에 입증되는 경우는 예외로 두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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