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해외 디아스포라와 탈북민, 그리고 조국
무더웠던 한여름의 뙤약볕이 가을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아침저녁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실감케 합니다. 지난여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저는 2주간 미국 시카고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해외 디아스포라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였지요. 조국의 분단을 아파하며 한반도 통일을 위해 일하는 재미교포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한시도 조국을 잊지 않고 북한의 변화를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1990년대 북한에서 대량 아사자가 발생한 당시부터 지금까지 매주 북녘 동포를 위한 기도모임을 개최하는 단체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지척에 북한땅을 두고도 통일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대한민국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태평양 건너 이역만리에서 조국의 분단을 아파하며 눈물짓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인지요.
수십 년 전 초기 해외 이민자의 현지 정착 과정은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차별적 대우와 시선 속에서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이민 1세대의 헌신과 수고는 이민 2, 3세대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자랑스럽게도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수많은 인물이 미주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지요. 마침 올해는 미주 한인 이주 역사 120주년이어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의미가 재조명됩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이주해 온 102명의 삶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100여 년의 시간 동안 그들의 눈물과 수고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었습니다.
한반도 통일은 국내 문제인 동시에 주변국과의 관계와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해외 디아스포라는 통일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든든한 기둥입니다.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며 첨예하게 대립할 때 재외동포들은 화해의 길잡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그들은 해외 이민자로서 탈북민의 정착과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합니다. 언어 문제, 두고 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낯선 곳에서의 차별적 시선, 이주자로서의 정체성 혼란 등은 그들이 겪는 공통적인 마음입니다. 탈북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건 재외동포가 지닌 또 다른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미주 전 지역에 탈북민과 재외동포들의 연합모임이 활발합니다. 미국으로 이주한 탈북민은 미국 유수의 대학에 진학해 통일인재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어느 동포분께서 저의 손에 흰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봉투 겉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지요. “탈북자들을 위해 써 주십시오.”1980년대 미국에 이민 온 그분의 삶은 절대 녹록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초기 이민자가 겪었던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은 여유로운 삶을 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풍족함을 이제 탈북민 정착을 위한 후원금으로 주로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자유민주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은 한 사람의 인권과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번 회의에서 사진을 통해 북한 주민의 열악한 생활상을 본 어느 동포는 눈물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저렇게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민 2세대인 그 청년의 눈물은 왜 우리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일해야 하는지를 말해주었습니다. 북녘주민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국을 가슴에 품은 이민 2, 3세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요.
제가 머물렀던 곳은 시카고였습니다. ‘City of wind(바람의 도시)’라는 슬로건을 가진 도시이지요. 미시간호수를 품은 시카고는 다운타운 한가운데를 따라 자유의 길을 만들어 놓았지요. 고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유의 바람이 저 북녘땅에도 불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저 북녘의 사람들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말이지요. 작열하던 한여름 태양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무기력한가 봅니다. 3대 세습으로 이어져 영원할 것 같던 북한의 독재도 이제 변화를 맞이할 때가 왔습니다. 남북한 주민과 재외동포 7000만 모두가 행복해지는 통일조국이 우리에게 성금 다가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어느덧 가을이 반가운 손님으로 우리 곁에 온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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