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끼니] 시즈오카의 녹차 젤라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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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는 일본인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식품이다.
그런 일본에서 시즈오카현은 연간 일본 녹차 생산량의 40%를 담당하는 최대의 녹차 산지였다.
하겐다즈의 녹차 아이스크림은 녹차의 맛과 향이 진하기로 유명했고 이 점이 일본인의 기호에 맞아떨어졌다.
1907년 시즈오카현에서 창업한 녹차 가공회사 '마루시치제다(丸七製茶)'는 이 점에 착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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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는 일본인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내린 식품이다. 그런 일본에서 시즈오카현은 연간 일본 녹차 생산량의 40%를 담당하는 최대의 녹차 산지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녹차 생산량에 있어 가고시마현에 1위를 종종 내주곤 한다. 시즈오카현의 입장에서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위기는 커피에 밀려 녹차의 소비량 자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녹차 소비가 줄어들면 지역의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때 등장하는 해법은 당연히 ‘다양화와 고급화’.
녹차 소비의 다양화를 위한 시즈오카의 노력 가운데 내가 특히 흥미롭게 생각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첫 번째는 ‘차와리(茶割り)’. 증류주에 약한 일본인이 소주나 위스키 같은 독주를 즐기기 위해 고안한 것이 물로 희석해서 마시는 방법이다. 차가운 물을 섞어서 희석하면 ‘미즈와리(水割り)’, 뜨거운 물을 섞어서 희석하면 ‘오유와리(お湯割り)‘라고 한다. 여기서 착안해 차 생산량이 많은 지역에서는 녹찻물을 섞어 마시는 차와리를 즐긴다. 그런데 시즈오카 사람들은 차와리를 좀 심하게 즐긴다. 소주 같은 증류주뿐만 아니라 청주 같은 발효주까지, 아니 모든 술에 녹찻물을 타서 마신다. 특히 커피를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이 방식을 선호한다. 실제로 차와리로 술을 마시다 보면, ‘녹차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제일이구나’ 싶다.
두 번째는 ‘녹차젤라또’. 1990년대 이후 일본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하겐다즈’다. 미국 브랜드인 하겐다즈가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이 의아할 수 있지만, 하겐다즈는 일본에 생산 공장을 둘 정도로 녹차 아이스크림에 공을 들였다. 하겐다즈의 녹차 아이스크림은 녹차의 맛과 향이 진하기로 유명했고 이 점이 일본인의 기호에 맞아떨어졌다. 1907년 시즈오카현에서 창업한 녹차 가공회사 ‘마루시치제다(丸七製茶)’는 이 점에 착안했다.
녹차의 농도에 따라 No.1에서 No.7까지 일곱 등급으로 나눠서 젤라또를 만들었다. 마루시치제다의 설명에 따르면 No.1의 농도가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의 농도와 비슷하다고 한다. 바로 여기서 일본 마케팅의 실력이 드러난다. 어차피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의 맛은 안다. 그러니 No.1과 당연히 비교를 해보고 싶어진다. 그럼 그다음에는? No.2에서 No.7까지 차례대로 먹을까? 천만의 말씀. 사람들에겐 그럴 돈도 시간도 없다. 당연히 No.7으로 직행한다. 즉 일곱 개의 등급으로 나눈 것은 최고 등급인 No.7을 판매하기 위한 눈속임이다. 그래서 제작사 측은 No.7 젤라또에 한해서만 ‘세계에서 가장 진한 녹차 아이스크림’이라는 광고를 한다. 이러니 녹차 젤라또에 별 관심 없던 사람도 ‘세계 제일이라니 한 번은 먹어봐야지’라며 도전한다. 덕분에 No.1~No.6의 판매량을 다 합친 것만큼 No.7이 팔린다.
그렇다. 지역의 특산물을 맛있게 가공해야 팔린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안일하다.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브랜드가 없으면 팔리지 않는다. 브랜드가 없다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한다. 그래야 지갑을 연다. 스스로 레벨을 창조하고 그 끝에 ‘세계 제일’이라는 수식어 정도 붙여주는 스케일이 있어야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한 가공식품 개발의 첫 번째 명제는 ‘고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라!’임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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