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최욱경이 겪었던 낯선 미국… 흑백 드로잉-크로키와 詩로 풀어내다

부산=김민 기자 2023. 9.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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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추상화가로 잘 알려진 최욱경(1940∼1985)은 그림만 남긴 것이 아니다.

최욱경이 1963년 미국으로 떠나 크랜브룩 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공부할 무렵, 학교에서 누드 모델을 보고 그린 것들이다.

전시장에서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카운터에 놓인 그의 시집이다.

파란 모자를 쓴 최욱경의 자화상이 표지인 시집 안에는 그가 마주했던 뜨거운 인생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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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부산 최욱경 개인전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서 출발
삽화 드로잉-판화 등 38점 전시
최욱경의 1969년 작품 ‘무제(When the time comes)’. ‘그때가 오면 해가 뜰까 /…/그런 시간이 정말로 내게 올까?’라는 문구가 그림 아래쪽에 영어로 적혀 있다. 국제갤러리 제공
‘나/조그만 조약돌 되기/바라니!//바닷가에 조용히 무릎 꿇고 앉아/밀려오는 파도의 흐느낌을 배우고/몰아치는 폭풍의 노여움을/배우려니!’(최욱경의 시 ‘조약돌’ 중)

요절한 추상화가로 잘 알려진 최욱경(1940∼1985)은 그림만 남긴 것이 아니다. 첫 번째 미국 체류를 마치고 한국에 머물렀던 1972년, 그는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을 펴냈다. 유학 시절에 쓴 시 45편과 삽화 16점으로 구성된 이 시집엔 타지에서 겪은 외로움, 자아에 대한 고민, 그리고 절절한 사랑의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지난달 25일 개막한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은 이 시집에서 출발했다. 우선 시집에 삽화로 소개된 16점 중 6점인 ‘습작’ ‘실험’ ‘I loved you once’ ‘Study I’ ‘Study II’ ‘experiment A’가 소개된다. 종이에 그려진 드로잉들은 그의 추상이 단순히 유행하는 미술 사조를 따른 것이 아니라, 삶에서 겪은 감정과 고민에서 출발한 것임을 보여준다.

1969년 그린 작품 ‘무제’엔 “그때가 오면 해가 뜰까 /…/ 그런 시간이 정말로 내게 올까?”라는 내용이 영어로 적혀 있다. 낯선 곳에서 예술가로 살아남아야 하는 막막함과 암담함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고 풀어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1960년대 그린 크로키 9점도 전시된다. 최욱경이 1963년 미국으로 떠나 크랜브룩 미술학교 서양화과에서 공부할 무렵, 학교에서 누드 모델을 보고 그린 것들이다. 인물들이 움직이려고 하는 순간을 포착한 그림은 거침없고 대담하다. 이 크로키들은 대부분 유족이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전시에선 드로잉와 크로키에 더해 판화까지 작품 총 38점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모든 작품이 흑백으로만 구성돼, 그간 화려한 색채 추상으로 최욱경을 접했던 관객에서 새로운 재미를 준다. 색이 없어진 덕분에 그의 필치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또 그림 옆에 그가 써 내려간 글귀들도 더 선명히 드러난다.

전시장에서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카운터에 놓인 그의 시집이다. 1972년 초판본은 전시팀이 헌책방을 수소문했으나 구하지 못했고, 사후에 나온 개정판을 전시하고 있다. 파란 모자를 쓴 최욱경의 자화상이 표지인 시집 안에는 그가 마주했던 뜨거운 인생의 순간들이 담겨 있다. 10월 22일까지. 무료.

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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