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장(腸) 이야기

경기일보 2023. 9.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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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렬 한의학 박사

인간에게 있어 음식은 일종의 이물질이며 그 속에는 때때로 유해물질도 섞여 있다. 이를 몸속으로 받아들여도 될지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로 장의 역할이다. 따라서 장에는 우리 몸을 병원균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면역계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핵심 기능을 맡고 있는 것이 장이다. 

장에는 소화, 흡수하는 세포뿐 아니라 신경세포도 존재하는데 그 수가 1억개에 이른다. 이는 뇌 외의 기관에 분포하는 신경세포의 약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그래서 장은 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장기이기 때문에 ‘제2의 뇌’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놀라운 사실은 인간의 감정과 기분을 결정하는 물질 대부분은 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과 애정을 결정짓는 세로토닌과 도파민 등을 장에서 합성하고 있어 인간의 감정 변화에도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는 고차원적 기관이다. 도파민은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로 흔히 ‘행복물질’이라고 부른다. 도파민의 양이 정상적으로 분비되면 행복, 의욕, 집중력, 성취감 그리고 성욕 등이 살아나 삶에 활력을 준다. 

그러나 과하면 조울증, 정신분열, 중독(도박·마약·게임·술·담배 등) 같은 무서운 부작용이 발생한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대표적으로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이 나타나기도 한다. 도파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음식물을 통해 필수 아미노산인 페닐알라닌을 섭취해 얻은 도파민 전구체인 ‘L-토파’를 뇌에 전달해야 하는데 그 담당이 장내 세균이다. 

세로토닌도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로 인간과 동물의 위장관, 혈소판, 중추신경계에 주로 존재하며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으로 우울함과 불안감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 또 세로토닌은 식욕과 수면에도 관여하며 특히 탄수화물 섭취와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어 갑자기 식욕이 증가한다면 세로토닌 감소를 의심해 봐야 한다. 세로토닌 전구체 또한 뇌로 보내기 위해서는 장내 세균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장내 세균은 면역력을 억제해 알르레기성 질환과 자가면역 질환을 막아주고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예방하고 암 발생도 억제한다. 그러나 과도한 항생물질의 사용과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 인스턴트나 가공식품의 지나친 섭취로 장의 환경이 무너져 정신적·육체적 건강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묻지마 공격과 절제 안 되는 데이트폭력 및 살인 등 강력 사건과 마약, 우울증, 치매, 자살 등이 도를 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존재하겠으나 식습관에 의한 장내 환경이 무너진 탓도 크다고 생각한다. 장에는 유익균과 유해균 그리고 면역력이 저하되면 나쁜 영향을 미치는 중간균이 존재한다. 유익균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유익균 85%, 유해균 15%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섬유질이 많은 곡류, 채소류, 콩류 그리고 과일류 같은 식물성을 충분히 섭취해야 하며 적당한 운동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건강은 장에서 비롯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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