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아침] 아버지가 허물어지고 낯설어진다
언제부턴가 경찰청 안전 안내 문자로, “○○에서 실종된(배회하는) ○○○를 찾는다”는 문구가 자주 오르고 있다. 이 중 70대 이상의 대상자는 주로 치매환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치매환자가 급증하는 상황이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0년 전국 65세 이상 치매추정환자는 약 84만명으로 10명당 1명꼴이다. 이 추세라면 2030년에는 치매환자가 136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치매는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이웃, 우리 가족,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아버지’는 운명적인 이름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에게서 나서 아버지(어머니)가 되고 아버지로 돌아간다. 아버지는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한때는 가장 강력했고 가장 친근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차츰 허물어지고 점차 낯설어진다.
프랑스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의 희곡 ‘더 파더’는 그런 아버지를 그린다. 2012년에 초연된 이 연극(Le Pere·아버지)은 프랑스 몰리에르상, 영국 로런스 올리비에상, 미국 토니상 등 세계 최고 권위의 공연상을 휩쓸었다. 그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다. 이어 작가가 직접 감독으로 나선 동명 영화 ‘더 파더’(2020년)는 배우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 속에 오스카 남우주연상과 각색상을 받으며 더욱 명성을 얻게 됐다.
작품 속 아버지는 자신이 치매환자임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츰 자신의 집도, 딸도, 자신조차도 낯설어진다. 사람은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기대하기에 오늘을 살아간다. 그렇지만 추억할 과거가 사라지고, 기대할 미래가 없어져 가는 아버지. 망연자실이요 비참함이다. 그러나 질 수밖에 없는 싸움임을 알면서도, 무너져 내리는 기억 끝을 붙잡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아버지로서의 위신을 잃지 않고자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는 다시금 강력해지고 또한 따뜻해진다.
때맞춰 한국에서도 연극 ‘더 파더’가 공연(19일~10월1일·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된다고 한다. 특별히 거장의 경지에 이른 전무송과 만만찮은 관록을 지닌 전현아, 닮은 듯 다른 듯 배우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실제 부녀가 같은 무대에서 가슴 먹먹해지는 부녀의 스토리를 선보인다고 한다.
‘더 파더’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극이 진행되기에 서글프고 외로워 보이는 한 치매 노인의 이야기를 넘어, 우리 시대 아버지의 비애까지 오롯이 전하고 있다. 이 가을에 희곡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치매 노인 아버지’를 만나 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새롭게 치매 노인과 아버지에 대해, 그리고 타인과 자신에게도 더욱 너그러운 마음과 시선을 갖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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