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R&D 예산 싹둑, 과학을 실업자 만들건가

경기일보 2023. 9. 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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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이렇게 말했다. “회계를 보면 기업이 보이고 예산을 보면 정부가 보인다.” 국무회의 자리였다. 또 전(前) 정부 살림살이를 ‘재정 만능주의’, ‘방만 재정’, ‘선거 매표 예산’으로 규정했다. 이와 차별화된 건전 재정 기조를 강조했다. 그렇게 편성된 윤석열 정부 2024년도 예산안이다. 657조원 규모다. 2023년보다 18조원 늘었다. 증가율 2.8%다. 문재인 정부 5년 평균치는 8.7%였다. 이걸 재정건전성 징표라고 내놓은 건지 모르겠다.

틀렸다. 단순한 예산 증감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 항목별 건전성이다. 불요불급 예산 삭감, 집중 선택 예산 배정 등이 포괄적으로 분석돼야 한다. 그렇게 보면 이번 예산은 ‘방만·매표’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병사 월급을 135만원에서 165만원으로 인상했다. 0세 아동 부모급여를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인상했다. 노인 기초연금도 33만4천원씩 올렸다. 모두 대선 당시 공약이었다. ‘문재인 정부 선거 매표 예산’과 다를 것도, 나을 것도 없다.

특히 심각한 게 과학기술 연구 예산이다. ‘무슨 곡절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잘려 나갔다. 지난해 정부 R&D 예산에서 무려 16.6%나 삭감했다. 세수 감소로 인한 불가피한 축소로 설명 안된다. 살폈듯이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7.5% 늘었다. 외교·안보 분야는 19.5%나 늘었다. 두 자릿수 삭감률을 기록한 것은 R&D 예산이 유일하다. 1991년 이후 33년 만에 R&D 예산 후퇴다.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총 예산 대비 3%대 추락이다.

더 섬뜩한 것은 향후 계획이다. 내년 예산안과 함께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발표했다. 2023~2027년 총지출 연평균 증가율을 3.6%로 제시했다. R&D가 12대 분야 가운데 가장 낮은 0.7% 증가율로 책정됐다. 향후 5년간 R&D 예산을 동결할 것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정부 내내 정부 R&D는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투자 연구기관의 연구원 채용 계획도 큰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런 불길한 소문은 이미 청년 과학도들에게 번졌다.

앞서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예산을 언급을 한 바 있다. ‘나눠먹기, 갈라먹기’, ‘R&D 카르텔’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백 번 이해해 그런 문제점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반영했다고 치자.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된다. 문제된 부분은 도려내는 것이다. 효율성 기하고 투명성 확보하면 되는 것이다. 어쩌자고 백년대계, 과학의 떡잎을 잘라 버리나. 첨단 과학 시대 5년 뒤처진 기술이 어떤 재앙을 초래할지 몰라서 이러나. 윤 정부를 위해서라도 다시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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