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줌인/임현석]모순 없는 삶은 없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는 어느 쪽인가. 현실에서 그는 원폭 개발과 일본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투하에 일조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은 없다. 추상적으로 반성을 암시했을 뿐 첨예하고도 직접적인 윤리적 질문에 대해선 외면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반면 오펜하이머를 알던 이들은 그가 원폭 개발 과정에서의 자신의 책임을 강하게 의식했다고 회고한다.
그의 생애를 다룬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작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따라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면에 보다 방점을 찍는다. 이러한 영화 연출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1954년 비공식 청문회이다.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이 미국을 뒤흔들 당시 정부는 한때 공산주의자와 어울린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행적을 문제 삼는다.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소련이 1949년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한 것도 문제가 된다. 오펜하이머는 소련 스파이 혐의를 받고 안보 인가 등 공직 권한이 박탈될 위기에 처한다.
아내를 비롯해 동료들이 오펜하이머가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청문회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할 것을 종용하지만 청문회 내내 그는 무기력할 뿐이다. 함정을 놓으며 옥죄어 오는 질문에도 그는 보호벽을 치지 않는다. 덫으로 걸어가는 일이 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논리에 의지한다. 이 과정에서 청문위원들은 그의 행보를 들여다본다.
이때 그는 공산당원은 아니었지만 아내와 친동생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중 많은 이가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있었고 심지어 당원이기도 했으며 한때 자신도 그 사상에 가까웠다는 점을 회고한다. 교수로서 학내에선 타협적이지 않은 모습도 보이지만, 정부로부터 핵 개발 프로젝트 주도 권한을 부여받자 과학 행정가로서 자유분방한 물리학자들을 능숙하게 리딩했던 점에서 의심의 눈총을 사게 된다.
그가 불륜을 저지르고 윤리에 무감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원자폭탄 개발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윤리를 강하게 자각했다는 점이나, 비범한 천재성과 공존한 열등감이라는 감정도 언뜻 모순돼 보인다.
그는 미세한 마음의 작용을 청문위원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하고, 숱하게 허점을 노출하고 만다. 이론물리학자로서 수식과 증명의 세계에서 분투하던 그가 논리의 바깥에서, 설득할 수 없는 진실이라는 모순의 극점으로 치닫는다. 그는 벼랑 끝에서 더할 나위 없이 진실되고 자아는 통합돼 있으며, 바로 그 점이 필연적으로 그에게 반성과 죄의식의 자리를 만들어 낸다.
영화는 오펜하이머 비공식 청문회와 함께 그와 악연으로 얽힌 스트로스 제독(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미 상무장관 공식 청문회를 교대로 보여준다. 스트로스는 자신의 삶이 무결하다고 믿는 쪽이다. 청문회에서 그동안 자신이 믿은 진실이 순식간에 깨지는 과정을 마주한다. 스트로스 제독 역시 청문회를 거쳐 몰락한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지뢰가 삶에 잠재돼 있고, 그걸 밟고 만다.
모순 없는 삶은 없다. 삶에서의 결함을 종종 후회하고 성찰하는 이와 그러지 않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이념화된 정치 언어는 왜 무도한가. 그것은 아이러니로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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