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글 보급 앞장 섰다”는 한국 20만 유튜버 ···혐한론자들은 ‘신바람’

김태원 기자 2023. 9. 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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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본이 한국인을 노예로 부리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으로 한글을 앞장서서 보급했다."

구독자 20만여명을 보유한 한국 유튜버가 일본제국이 일제강점기 한글 보급에 앞장섰다는 발언을 했다가 파문을 일으켰다고 일본 뉴스 서비스 업체 AFPBB가 3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일제가 한글을 보급했다는 20만 유튜버'라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에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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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앞장서서 한글을 보급했다고 주장한 용찬우씨. 유튜브 채널 '용호수' 방송화면 캡처
[서울경제]

"1920년대 일본이 한국인을 노예로 부리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으로 한글을 앞장서서 보급했다."

구독자 20만여명을 보유한 한국 유튜버가 일본제국이 일제강점기 한글 보급에 앞장섰다는 발언을 했다가 파문을 일으켰다고 일본 뉴스 서비스 업체 AFPBB가 3일 보도했다.

AFPBB는 이날 유튜브 채널 '용호수' 운영자 용찬우(본명 박찬우)씨의 과거 문제 발언을 지적한 영상을 언급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일제가 한글을 보급했다는 20만 유튜버'라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에 확산됐다.

AFPBB는 프랑스 통신사 AFP의 일본 자회사 크리에이티브링크가 운영한다.

영상에서 박씨는 "훈민정음을 벗어나야 하고 영어를 통해 세상에 있는 정보를 마음껏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며 문제의 발언들을 쏟아냈다.

이어 "세종이 한글을 만들 때 '어린 백성을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어리다'는 멍청하다는 뜻"이라며 "멍청한 백성을 위해 만든 거다. 멍청하게 살고 싶다면 한글만 이용하면 된다"고 자학했다.

그러면서 "훈민정음이 소프트웨어로 깔려있으면 가치 있는 사고가 대단히 힘들어진다. '도스' 깔린 PC에서 영상 편집을 할 수 없는 것과 똑같다"면서 "한국어로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해 내려면 선조들이 사용하던 한문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는 이날 오후 9시56분 현재 914건의 댓글이 달렸는데 일부 혐한론자들이 박씨의 주장에 동조해 한글을 비하하거나 한국을 조롱하는 근거로 박씨의 발언을 활용하고 있다.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네티즌은 식민지 시대 일제의 ‘시혜’를 과시했다. 그는 “1920년 이전 대학이나 철도가 전혀 없던 땅에 한반도 최초의 대학을 세워 교육기관을 확충하고 철도를 깔아 사람과 물자의 흐름을 개선했다”며 “일반적인 식민지라면 물자나 인력을 착취할 뿐 이런 파격적인 대접을 해주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부선, 경의선 등 건설에 터무니 없이 낮은 임금 혹은 무임으로 노동력을 징발한 사실은 철저히 외면한 일방적 주장이다. 게다가 바로 그 철도가 조선 곳곳의 물자와 인력을 착취하는 수단이었다는 과거를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일방적 주장은 무려 1만3217개의 ‘좋아요’를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용호수' 방송화면 캡처

한 네티즌은 "일제가 병합할 무렵 복잡한 일본어를 이해하지 못한 조선인들에게 외우기 쉬운 언어를 가르쳤을 뿐"이라며 "일본이 통치한 대만에서는 고도의 중국어가 보급돼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이 왕성한 대만인들은 일본어에 관심을 갖고 가르치지 않아도 잘 배워갔다"고 조롱성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댓글에는 "감사하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일본이 병합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의 속국이 됐을 것", "(한국이) 지금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일본이 있었기 때문" 등의 근거 없는 낭설도 속출했다.

실제로 일제강점 당시 경제 구조상 조선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의도적으로 조선의 공업 발전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일제는 메이지유신 이후 정부 주도의 공업을 육성해 민간에 넘기는 방식으로 국가 산업 기반을 확보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을 그와 같은 발전 경로를 밟게 할 이유가 없었다. 조선의 인건비가 더 싼 상황에서 조선의 공업을 일으킬 경우 되레 일본 본토의 공업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한 탓이다.

결국 3·1운동 직후 일제가 조선의 경제를 발전하겠다고 내놓은 정책은 ‘철도부설과 산미증식계획’일 뿐이었다. 도로나 철도 건설, 항만 정비, 수리조합사업 등 인프라 정비에만 투자를 집중하고 쌀 생산을 통한 ‘단일작물 농업’ 경제를 강제했다. 그 결과 쌀값이 떨어지면서 조선 경제는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었다.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위원은 “일본은 조선 경제가 발전해야 할 시기에 발전하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한국일보를 통해 전했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그럼에도 일본이 재정적 투자를 하지 않았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주장이다. 일본이 투입한 돈은 대부분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이 장악했다. 조선인 청부업자는 구조적으로 배제됐다.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조선인들의 임금을 떼먹거나 매우 조금만 줬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등의 공식 자료들에선 당시 조선인 막일꾼의 하루 임금을 80전~1엔가량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도리우미 위원은 각종 자료를 토대로 실제론 30~40전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표면적으로는 공사금액의 평균 57%를 노무비로 책정해 놓고 실제론 17% 정도만 주고 나머지를 ‘부당 이득’으로 챙기는 꼼수를 편 것이다.

한편 박씨는 이와 같은 내용으로 지난 2021년 자신이 졸업한 경기도 이천의 한 고등학교를 찾아 강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2021 용호수 학생강연’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고등학생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에게 강연을 했다고 게재했다.

박씨의 이 영상 댓글에는 “용호수님은 적어도 저에게는 지식 이상의 가치를 전달해주시는 가치생산자의 역할을 해주고 계시다”, “훈민정음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은 영화 '컨택트'에서 다뤘던 주제와 비슷한 구조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강의 들었던 학생이다. 학교나 다른 어른들한테는 들을 수 없었던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점과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는 등 찬사가 이어졌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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