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등 해외 억류 미국인 ‘석방 협상 전문가’,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 미국 대사 별세
“적이라도 존중해야” 원칙 유명…올해 1월엔 러 구금자 귀국 관여도
수차례 방북해 북핵 해법과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해 북한과 협상했던 빌 리처드슨 전 주유엔 미국 대사가 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75세.
리처드슨 글로벌 참여센터(RCGE)는 이날 성명을 통해 리처드슨 전 대사가 전날 매사추세츠주 채텀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40년 넘는 정치 인생 동안 특히 해외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해 외교력과 협상력을 발휘한 것으로 명성이 높다.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북핵 해결과 억류 미국인 석방을 이끌어낸 것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친숙하다.
1994년 그가 빌 클린턴 정부의 북핵 해법 논의차 방북했을 당시 주한미군 헬기가 휴전선 인근에서 비행하다 북한에 의해 격추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그는 북한 측과 조종사 송환 협상을 벌여 데이비드 하일먼 준위의 유해를 돌려받고, 조종사 보비 홀 준위를 사건 발생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시켰다.
1996년에는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특사로 방북, 스파이 혐의로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의 석방을 놓고 강석주 당시 외교부 제1부부장과 담판을 지었다. 2009년에는 탈북자 문제 취재 도중 국경을 넘어 북한에 억류된 중국계 미국인 로라 링 기자가 풀려나는 데 기여했다. 2016년 북한이 대학생 오터 웜비어를 억류했을 때는 뉴욕에서 북한 외교관들을 만나 웜비어 석방을 요청했다. 2013년 민간인 시절에는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등과 방북해 억류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의 석방을 요청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북한, 이라크, 쿠바 등 미국의 적성국에 억류된 미국인과 미군 약 80명이 석방되는 데 기여했다고 전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들과 마주앉아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스스로를 “깡패 담당 비공식 차관”(informal under secretary for thugs)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 했다고 NYT는 전했다. 그는 자신의 협상 원칙에 대해 “첫째, 적이라도 존중하고 적 또한 체면을 살릴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최근까지도 해외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한 역할을 활발히 해 왔다. 지난해 12월 러시아에 억류된 미국 여자농구 스타 브리트니 그라이너 석방 협상에 관여했으며, 올해 1월에는 러시아에 구금된 해군 출신 테일러 더들리가 본국에 귀환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그는 판문점 견학 도중 무단 월북한 미군 트레비스 킹 이등병의 석방을 지원하겠다고도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그가 뛰어난 협상 기술과 개인적 따뜻함으로 공식 대표단이자 ‘프리랜서 문제해결사’로서 억류자 송환이라는 인도주의 임무를 수행했다고 전했다.
대북 비공식 외교 활동을 인정받아 2019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해외 억류 미국인 석방에 기여한 공로로 5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다.
리처드슨 전 대사는 2003~2011년 뉴멕시코 주지사를 지냈으며, 그에 앞서 14년간 뉴멕시코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기에는 주유엔 미국 대사(1997~1998), 에너지부 장관(1998~2000)을 역임했다. 2008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첫 히스패닉 미국 대통령을 꿈꾸며 도전했으나 중도 사퇴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상무부 장관으로 지명됐으나 부패 스캔들로 인해 자진 포기했다.1947년 캘리포니아주 파사데나에서 태어난 그는 은행 임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멕시코에서 보냈으며 13세 때 미국으로 와 터프츠대와 동대학원 플레처스쿨을 졸업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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