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지우기’ 총리 따로 국방부 따로…난맥상 드러낸 정부

신형철 2023. 9. 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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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역사 쿠데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추진으로 불거진 윤석열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에 야권과 학계 등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홍범도 지우기’를 놓고 국무총리와 국방부가 서로 다른 입장을 내고, 똑같은 독립전쟁 영웅 홍 장군 흉상인데도 육사에선 철거하고 국방부 청사에는 존치하기로 하는 등 모순이 노출되고 있다. 명분과 논리가 부족한 윤석열 정부의 무리한 ‘역사·이념 전쟁’을 일선에서 수행해내느라 난맥상이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의 오락가락 양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 진수된 해군의 1800t급 잠수함 ‘홍범도함’ 개명 문제를 두고 두드러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3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홍범도함 함명 변경에 대해 묻자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군함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름이 (소련)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으로 하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튿날인 지난 1일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총리께서 의원 질문에 답한 것인데 그럴 필요성을 얘기하신 것 같다”며 “해군에서 함명을 바꾸거나 하는 검토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역사·이념 논란에 한층 기름을 부을 수 있는 홍범도함 개명 문제를 두고 정부 내에서 조율되지 않은 입장들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면서 혼란을 키우는 모습이다.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망하거나 독재 통치자가 마음대로 바꾸는 경우를 빼고는 군함 이름이 변경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1999년 ‘이리함’을 ‘익산함’으로 바꾸는 등 지방자치단체 명칭 변경에 따른 함명 변경이 있었을 뿐이다.

육사 교정 내 충무관(종합 강의동) 앞 독립 영웅 5위 흉상 가운데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 밖으로 옮기고, 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등 나머지 흉상은 교정 내 다른 장소로 옮기겠다는 육사의 결정 또한 ‘꼼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애초 독립 영웅 5인의 흉상을 외부로 옮기려다 반발이 거세지자 홍 장군만 소련 공산당 경력을 문제 삼아 철거하기로 한 것이다. 더구나 국방부는 홍 장군 흉상을 육사에서는 철거하면서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 홍 장군 흉상은 그대로 두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에서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활동 경력 △자유시 참변 연관 의혹 △봉오동 전투에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까지 제시하며 홍 장군 흉상이 육사에 부적절하다고 밝혀놓고, 국방부 청사 앞 흉상은 존치하겠다는 모순이다.

독립군 역사 연구의 권위자인 반병률 한국외대 명예교수(사학과)는 3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정상적인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소수의 사람들이 밀실 결정을 하니 이런 난맥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 교수는 “국군이 만들어진 때와 비교해 여러 세대가 지나갔고, 국가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기준도 많이 바뀌었다”며 “그런데도 군은 이를 무시하고 1970년 이전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지난달 27일에 이어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흉상 철거는 역사를 왜곡하고 국군과 육사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처사”라며 대통령실에 흉상 철거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는 (홍 장군의) 그 애국심과 헌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육사 차원에서 논의된 일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논란이 커졌으면 대통령실이 나서서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철 지난 색깔론에 꽂힌 윤석열 대통령의 언행이 날로 점입가경이다. ‘반공 매카시즘’이 아닌 ‘친윤 매카시즘’의 절정”이라고 비판했다.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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