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스러져 “집단 우울증”…틀어막는 당국에 더 분노

강은 기자 2023. 9. 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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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 학교 앞에 근조화환·손편지…추모 발길 잇따라
“또 참담한 소식 들어”…교사들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 요구
주말 집회 20만명 참석…4일 추모제, 학교 30곳 휴업 결정
‘50만 교원 총궐기’ 국회 앞 가득 메운 교사들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를 가득 메운 교사들이 지난 2일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참가해 교육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미디어팀 제공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지난 7월 사망한 교사를 향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 서울의 또 다른 초등학교 앞에도 교사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49재일을 나흘 앞둔 지난달 31일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교사가 스스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교사들의 마음속은 단지 슬픔을 넘어 분노와 비통함으로 가득 찬 듯 보였다. 3일 경기도 분당에서도 용인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주말을 맞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집회 뒤 늦은 시간까지 양천구 초등학교를 찾아 절절하고 애통한 마음을 표출했다. 주말 초등학교 앞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얼마나 더 죽어야 바뀔 것인가” “교육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라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3일 오전 양천구에 있는 A초등학교 앞에는 담장과 운동장을 둘러싸고 수백개의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었다. 정문 인근에는 방문객들이 손글씨로 쓴 포스트잇 등이 빼곡히 붙어 ‘추모의 벽’을 이뤘다. 지난 7월 숨진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붙었던 추모 현수막은 고스란히 이 학교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현장을 지킨 동료 교사 등에 따르면 전날 하루에만 추모객 2000여명이 이 학교 앞을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다.

교내에 설치된 분향소 인근은 동료 교사들의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20년 이상 경력의 초등교사 유모씨(48)는 “서초구 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됐다”면서 “(학교에 추모화환이 늘어선)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대로라면 돌아가시는 선생님이 또 나올 것”이라며 “교사들이 집단으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슬픔보다 분노가 더 커졌다”고 했다. 유씨는 “교육부가 ‘공교육 멈춤의 날’ 움직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겁박을 하고 있다”면서 “징계할 거면 해라. 교사들은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정모씨(47)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면서 “교사를 지켜야 할 교육부는 대체 어디에 있나”라고 했다.

교사들은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고 국회 차원의 법 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자발적으로 진행해왔다.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7차 추모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0만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렸다. 주최 측 관계자는 “지방에서 버스 500대를 대절했고, 제주도 등 섬 지역 교사를 위한 비행기 지원 좌석 수도 2대 규모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요구했다.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 서모씨(32)는 “반 아이 한 명이 난동을 부리기에 손목을 부여잡았다가 (아이가) 할퀴는 일이 있었다”면서 “학부모가 교사를 지지해줬지만 운이 좋았을 뿐, 언제까지 운에 기대 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망한 양천구 A초등학교의 교사 B씨(38)의 발인은 3일 오전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B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7시34분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초등교사노조연맹 등 교원단체의 설명을 종합하면, 교직 경력 14년차인 이 교사는 6학년 담임을 맡았다가 지난 5월 중순부터 병가와 연가를 연달아 썼으며 7월15일부터 8월31일까지 ‘질병휴직’에 들어갔다. 5월에는 학교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해 조퇴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관계자는 “고인이 (병가를 내기 전) 해당 학급에 학교장 종결로 처리된 학교폭력 사안이 있었다”면서 “다만 종결 이후에도 관련 학생으로부터 계속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등의 내용은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아이들 지도가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학부모 민원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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