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짐만 걸머졌던 대통령 양자 이인수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4·19로 하야해 하와이에 체류할 때 양자로 입적됐다. 1960년 11월 전주 이씨 문중의 결정이었다. 대학 졸업자에 프란체스카 여사를 생각해 영어를 할 줄 알고 미혼이었으면 하는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이인수 박사가 양녕대군 17대손이어서 16대손인 이 대통령과 계대(系代)도 맞았다. 이인수 박사는 독일 유학의 꿈을 접고 이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의 나이 서른 때였다.
▶이 대통령은 본처 사이에 아들이 있었으나 일곱 살 때 잃었고 프란체스카 여사와 사이에서는 자식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1957년 83세 생일에 당시 이기붕 국회의장의 아들 이강석을 양자로 입적했으나 이강석은 4·19 직후 부모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대통령은 6대 독자인 자신 때문에 고생한 아버지, 임종을 못한 어머니 얘기를 종종 하면서 후사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런 이 대통령이라 1960년 12월 인수씨가 도착하자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어찌할 바를 모르며 좋아했다.
▶이후 이인수 박사는 이 대통령의 공과를 제대로 평가받는 데 삶 전체를 바쳤다. 그는 이 대통령이 만든 체제에 살면서 건국 대통령을 폄훼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분의 공적은 독립운동은 물론 자유민주주의 노선 선택, 60만 국군을 양성, 한미방위조약을 체결 등 다 열거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것”이라고 했다. ‘공구과일(功九過一)’이라는 학자의 평을 소개하기도 했다. 2006년 KBS 드라마가 이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는 등 고소고발한 것도 여러 건이다. 대통령 양자로서 볕은 못 쫴 보고 음지에서 짐만 걸머졌던 인생이었다.
▶이인수 박사가 4·19가 일어난 지 63년 만에 4·19 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와 사과를 전했다. 이제 92세 고령인 이 박사 마음도 급했을 것이다. 그는 12년 전인 2011년 4월에도 참배하려다 4·19 단체들이 “갑작스럽다”고 저지해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이 박사는 “오늘 참배와 사과에 대해 선친도 ‘참 잘하였노라’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이념과 진영으로 갈려 반목하고 있지만 정파와 진영을 초월하는 일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4·19혁명 주도 인사 50여 명이 국립서울현충원의 이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것도 그런 예일 것이다. 올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에는 박정희·김영삼·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들도 함께했다. 이런 식으로 한 발씩 통합과 화해의 길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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