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개척의 시대…먼저 개발하면 우리 땅?

이정호 기자 2023. 9. 3.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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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월면에 건설될 기지의 상상도. 태양광 전지판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먹거리를 기르는 온실이 갖춰져 있다. 이동 수단이 되는 월면 자동차도 운영된다. 유럽우주국(ESA) 제공
우주 터미널·풍부한 자원 주목
미·중·러 등 ‘월면 착륙’ 안간힘
100개국 가입한 ‘우주조약’엔
영유권 주장 못한다 적시됐지만
법적 구속력 등 저지 수단 없어
“경쟁적 개발로 국가 분쟁 우려”
일각선 우주전쟁 전망도 내놔

#가까운 미래의 달, 이곳에는 화성 같은 먼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을 쏘기 위한 ‘터미널’이 건설돼 있다. 사람으로 북적이고 상점이 즐비한 터미널의 풍경은 지구의 공항과 다르지 않다.

미국 육군 로이 맥브라이드 소령(브래드 피트)은 이곳을 이용하는 승객 중 한 사람이다.

맥브라이드 소령은 공항의 탑승장 격인 터미널의 발사장으로 향하기 위해 월면차에 오른다. 그런데 출발 직후,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우주 해적’이 또 다른 월면차를 타고 빠르게 접근한다. 곧이어 벌어진 상호 총격전 끝에 양측 모두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2019년 개봉한 미국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이다. 우주 해적은 사실 여느 공상과학(SF) 영화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소재다. 외계인이나 태양 폭풍과는 달리 우주 해적에는 법적인 개념이 들어간다.

달에선 특정 국가의 행정·사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데, 그래서 영화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 우주 해적이다.

최근 현실 속 달에선 ‘월면 착륙’ 열풍이 불고 있다. <애드 아스트라>에서처럼 달에 우주선을 띄울 터미널을 짓고, 월면에 묻힌 광물자원을 캐내기 위한 전초 단계다.

학계에서는 각국의 경쟁이 과열되면 자칫 달에서 ‘우주 전쟁’ 형태의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달에서는 무력 대결을 방지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인 안전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다.

■ 경쟁 가열…터미널·광산 가치 조명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인도의 무인 우주 탐사선 ‘찬드라얀 3호’에서 분리된 착륙선 ‘비크람’이 달 남극에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지난달 20일 ‘루나 25호’의 월면 추락 이후 곧 다시 달 착륙선을 보낼 계획이고, 일본도 조만간 달 착륙선 ‘슬림’을 발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최근 달 착륙 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분야의 선도 국가는 미국이다. 지구상 국가 중 유일하게 인간을 달에 착륙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은 최근 한국과 영국 등 28개국이 가입한 ‘아르테미스 약정’을 만들었다. 이를 제도적인 기반으로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목표는 2025년 인간 2명을 달에 재착륙시키는 데 있다. 2020년대 후반까지는 달에 유인 상주기지를 짓는다는 게 미국의 청사진이다.

중국은 미국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이다. 2030년쯤 달에 사람을 보내고 기지도 만들 예정이다. 중국은 2019년 무인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인류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켰다. 내년에는 창어 6호를 달 남극에 안착시키려고 한다.

각국이 달을 향해 질주하는 건 달이 SF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우주 터미널’ 후보지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작은 중력을 이용해 무겁고 거대한 로켓을 손쉽게 쏠 수 있다.

달에는 마그네슘과 실리콘, 티타늄 같은 광물도 다량 묻혀 있다. 특히 희토류가 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꼭 섭취해야 하는 비타민처럼 희토류는 전자기기가 정상 기능을 발휘하려면 꼭 필요한 광물이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핵융합 발전의 원료인 ‘헬륨3’이다. 헬륨3 1g은 석탄 40t과 비슷한 에너지를 뿜는다. 달에 100만t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구로 공수한다면 무려 1만년간 에너지 걱정이 사라진다.

■ ‘영토’ 안 되지만 막을 수단은 없어

이런 달에 어느 국가가 욕심을 부려 울타리를 치고 특정 지역을 ‘영토’라고 선포할 수도 있지 않을까. 1967년 만들어져 현재 100여개 국가가 가입한 국제조약인 ‘우주조약’을 보면 “모든 국가는 어떤 천체에서도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고 적시돼 있다. 달을 점령하거나 소유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우주조약은 달 자원을 채취하는 일까지 막지는 않는다. 달은 법적으로 공해다. 공해에서 수산물을 잡을 수 있듯 달에서도 자원을 캘 수 있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우주법 전문)는 “국가 주권을 주장하지 않고, 달 특정 지역을 활용하기만 한다면 특별한 제한은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어느 국가가 달에 끝내 ‘국경선’을 그어 ‘내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현실적으로 저지 수단이 없다. 우주조약을 어긴다고 달에서 퇴출되는 식의 처벌을 내릴 주체가 국제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빌 넬슨 미 항공우주국(NASA) 국장은 지난해 7월 독일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중국이 달에 착륙해 ‘이곳은 중국에 속하는 곳이니 다른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을 매우 우려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 1월 그는 미국 언론에도 “중국이 달에서 자원이 풍부한 곳을 선점하고 미국을 내쫓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이 자국에 배타적인 경계선을 달에 그을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각국이 달에 기지를 경쟁적으로 만들면 국가 간 분쟁은 피하기 어렵다”며 “일부 학계에선 달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는다”고 말했다. 우주 경제가 날로 확대되면서 달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지만, 국가 간 분쟁을 예방하거나 조정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지구에서 신냉전을 이끄는 미·중이 극단적으로 맞선다면 달을 무대로 한 대결의 규모는 더욱 커질 공산이 크다. 김 교수는 “결국 유엔에서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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