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도굴
둥근 마제석기처럼
캄캄하게 봉인된 하늘 한끝을
누가 무쇠 날로 쳐서
이 밤, 허공에 새파랗게
불꽃을 일으켜세우나
누가, 잊힌
아득한 사람 하나 캐내자고
겹겹의 먹구름 묘혈을
저리 밤새 허무나
간밤 빗물에 씻겨 드러난
낯이 흰 돌멩이
젖은 한쪽 뺨이 이른 햇살에
말갛게 빛나는 아침
이덕규(1961~)
시인은 밤하늘을 거대한 무덤으로 인식한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소낙비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누군가 하늘을 파헤쳐 부장품을 도굴한다고 상상한다. “누가 무쇠 날”로 허공을 쳐서 번개가 친다니, 대단한 상상력이다. 무쇠 날은 스스로 새파란 불꽃을 일으킬 수 없다. 무언가에 부딪쳐야 새파란 불꽃이 튄다. 밤새 무쇠 날로 내리치자 “봉인된 하늘 한끝”이 서서히 무너진다. 한데 시인은 오래전 죽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잊힌 듯 잊히지 않은 아득한 사람을.
사나운 소낙비에 잠을 설친 농부 시인은 이른 아침 삽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논도, 밭도 걱정이다. 시인은 뒷산 오르막길 모퉁이에서 간밤 비에 씻겨 반쯤 묻힌 “낯이 흰 돌멩이” 하나를 발견한다. 밤새 비가 내려 땅에서 도굴하려다 못한 것이다. ‘알’을 닮은 돌은 마제석기(간석기)와 “아득한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젖은 한쪽 뺨”은 밤새 그리워한 흔적이 아닐까. 소란한 밤의 세계와 달리 아침은 “말갛게 빛”난다. 죽음의 이미지에서 길어 올린 삶의 생동감이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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