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헌법정신과 법원 판결에 부합하는 ‘노란봉투법’
‘정치의 사법화’라는 말이 꽤 익숙하다. 현실의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갈등은 범죄로 수사되거나 소송의 형태로 제기돼 최종적으로 법원 판결이 나와야만 해결되는 패턴을 보인다. 노동 사안도 마찬가지다. 개별적 분쟁과 달리 특정한 법리, 특히 정책적 분쟁은 반드시 대법원까지 가야 끝을 보게 된다. 특수고용직, 프리랜서를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결국 대법원이 이들을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라고 선언하고서야 논란이 끝났다(학습지 교사 노동조합 사건 등).
얼마 전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건에서 쟁의행위에 관한 두 가지 새로운 판결을 내렸다. 헌법상 노동3권 보장 취지를 고려해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일정하게 제한한 것으로 평가되는 판결들이다. 대법원은 쟁의행위로 노동자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때엔 손해 발생 기여도나 임금 수준 등을 고려해 책임 정도를 개별적으로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면서 ‘노조와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노동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은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쟁의행위를 한 사례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원청은 애초에 하청 노조를 대화 상대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노조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근거로 이같이 새로운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하청 노조의 원청에 대한 노동3권을 긍정하는 입장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올해 초 서울행정법원은 CJ 대한통운·택배노조 사건에서 하청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역시 헌법에 명시돼 있는 노동3권을 중요한 근거로 들었다.
판사로 재직 중인 친구가 사석에서 “왜 수백, 수천명 조합원을 둔 노조가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이 질문은 법정 밖에서 교섭과 합의, 노조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을 찾는 노사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이 하청 노조를 향한다면 어떨까. 현실에서 하청 노조는 아무리 조합원이 많고 단결이 잘되더라도 원청으로부터 아예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상대방과 다투다 보면 말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쟁의행위 손해배상 사건이 주로 하청 노조에서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의 470억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하청 노조 집행부를 상대로 제기된 것이다.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은 하청 노조와 원청이 서로 대화 상대방이 되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으로 대법원·서울행정법원 판결의 취지나 흐름과 일치한다. 일련의 법원 판결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중앙노동위원회 판정 등의 흐름도 같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입법을 미루는 것은 입법부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과 역할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헌법과 국제 노동기준에 부합하는 최소한의 규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입법부와 통과된 법안을 환대하는 대통령을 기대한다.
여연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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