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 혜택이 그렇게 많다는데”…아이 낳고도 혼인신고 안해

박나은 기자(nasilver@mk.co.kr),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3. 9. 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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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한부모 지원책 ‘역설’
각종 보조 받으려 혼인신고 외면
작년 혼인 外 출생 9800명
전체 출생아의 3.9% 차지
[사진 = 연합뉴스]
30대 회사원 A씨는 결혼을 한 지 벌써 4년이 지났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아이를 출산한 뒤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남편과 상의 끝에 마음을 바꿨다.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우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많다는 주위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처음에는 아기한테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서류상으로만 미혼모이니 차라리 경제적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지난달 아이를 출산한 30대 회사원 B씨도 사실혼 관계인 아내와 함께 자발적 미혼부를 택했다. 아내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출생신고를 마친 그는 “나의 성과 본을 모두 따를 수가 있기 때문에 선택에 큰 부담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출산까지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무늬만 미혼 부모’가 늘고 있다. 내집 마련이나 정부지원금 수령을 위한 소득 요건을 맞추기 위해 자발적으로 미혼 가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부정수급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일각에선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비혼 가정의 복지 혜택을 인정할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일 통계청의 ‘2022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외 출생아는 9800명으로 전체 출생아 가운데 3.9%를 차지했다. 출생아 수가 해마다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가운데 혼인외 출생아 수는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혼인외 출생아 수는 2020년 6900명에서 2년새 42% 늘었다.

자발적으로 미혼부모를 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고,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혼외자 아빠 등본에 출생신고’라는 게시글이 7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며 화제를 모았다.

정부는 미혼부모를 포함한 한부모 가족에 에너지 이용료 감면, 문화누리, 스포츠 바우처 등을 지원 중이다. 중위소득 52%(월 소득 약 170만원) 이하인 가정에는 월 20만원의 수당도 준다.

부동산 청약을 할 때도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30%(846만원) 이하(맞벌이는 140%, 911만원)만 가능하다. 1인 가구도 신청 가능한 일반 청약은 월평균 소득 100%(651만원)가 기준으로 신혼 부부보다 소득 조건이 낮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청약상의 이점 때문에 여전히 많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무늬만 미혼부모’가 미혼가정에 대한 정부혜택을 부정수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실혼 관계인 경우 미혼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등 제한을 두고 있지만 주소를 다르게 둔 경우 사실혼 확인이 힘들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부동산 특별공급 대책을 마련하면서 미혼 부모에게도 결혼가정 못지않게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무늬만 미혼부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앞서 정부는 내년 3월부터 공급하는 7만 가구에 출산한 이들에게 청약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사회보장 법제가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 부양이나 돌봄 등 가족만이 그 주체가 된다”면서 “결혼의 방식이나 출산의 환경 또한 선택 가능해야 하고, 그 선택으로 인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 따르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평균 혼외 출생비율은 1970년 7.4%였으나 1995년 23.9%로 상승했고 2020년에는 42%에 달한다. 세계적인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합계출산율 1.6명이 넘는 국가 중 비혼 출산율이 30% 미만인 국가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권의 신장과 여성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면서 1980년대 혼외출생율이 10%를 넘는 국가들이 등장했고, 2000년대 들어서며 혼인과 출산의 디커플링 양상은 유럽과 북미권 전역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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