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퇴출은 반인권” 판결에…이 도시, 마약·약탈 지옥됐다

이덕주 기자(mrdjlee@mk.co.kr) 2023. 9. 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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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유동인구 줄고 노숙자 넘쳐
샌프란시스코 경제 타격
민주당 텃밭에 평등 추구정책 과도해
법원은 ‘노숙자 퇴거는 반인권’ 판결
[UPI = 연합뉴스]
세계적인 테크 기업들의 연례 행사가 열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모스코니 센터. 수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개발자와 임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불과 두 블럭만 걸어가도 노숙자(홈리스)들이 골목 한 블록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여기서 10분 만 걸어가면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끔찍한 ‘지옥도’를 보여주는 장소인 텐더로인(Tenderloin)이 있다. 노숙자들이 대낮 길거리에서 마약을 주사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게 마약거래도 이뤄진다. 서울에 비유하자면 광화문 옆 청계천을 노숙자들이 가득채우고, 이곳에서 마약도 거래되는 격이다. 지난해말 조사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노숙자 수는 7700명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가 인구 80만명의 작은 도시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다.

노숙자와 마약이 샌프란시스코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 관광객들이 도시를 멀리하고, 상업 시설들이 문을 닫고 있다. CNN에 따르면 2020년 이후 40곳의 매장이 시 중심가에서 문을 닫았다. 미국 유명 백화점인 노드스트롬은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 노드스트롬 유니언스퀘어점을 35년 만에 폐점했다. 노드스트롬은 지난 27일 마지막 영업을 했고, 백화점 건물을 운영해온 웨스트필드 역시 운영권을 포기했다. CNN 등에 따르면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매출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4억5500만달러(6033억원)에서 2022년 2억9800만달러(3944억원)로 감소했고, 매장을 찾는 유동인구도 2019년 970만명에서 2022년 560만 명으로 반토막 났다.

코로나19가 끝나면서 미국 전역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여전히 2019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경제의 주축인 테크기업들도 도시를 떠나고 있다. 지난달 모스코니 센터에서 ‘넥스트2023’ 컨퍼런스를 열었던 구글은 내년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행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찰스슈왑은 2021년 본사를 텍사스로 옮기고 남아있는 직원수도 크게 줄였다. 올해 1분기 샌프란시스코의 사무실 공실률은 24.8%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5배 이상 높은 수치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한국 투자회사에서 일하는 A씨는 “샌프란시스코 문제는 시내 중심지를 노숙자들이 점령했다는 점이다. 우리 직원들도 노숙자 공격을 비롯한 봉변을 당한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는 노숙자들을 거리에서 쫓아낼 수 없다. 노숙자를 강제로 쫓아내려던 시도를 미국 연방 법원이 지난해 12월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노숙자에게 충분한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을 쫓아내는 것은 인권을 침해한다는 ‘노숙자 연합’ 단체의 헌법소원에 대해 손을 들어준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지역이고 ‘민주당’의 텃밭이다. 1964년 이후 시장은 모두 민주당에서 나왔고, 시의원들도 굳이 당을 밝힐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부 민주당 소속이다. 카말라 해리스 현 미국 부통령,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의 치안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경제가 영향을 받으면서, 시민들은 급진적인 진보 정치인과 그들의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계와 테크업계 종사자들 주도로 시민단체를 조직해서 적극적으로 정치운동을 하고 있다.

‘반 진보’ 운동 단체중 하나인 그로우SF의 스티븐 부스 공동창업자는 “그동안 좋게만 보였던 (포퓰리즘적인) 정책들이 사실은 나쁜 결정이었고,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만들어냈다”면서 “이제는 유능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를 이끌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또다른 문제는 상점에서 도난이 만연하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의 타겟이나 CVS 같은 대형 상점에는 자물쇠로 상품 진열장을 잠궈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좀도둑이 물건을 그냥 들고 가도 아무도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우SF에 따르면 2014년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도입한 ‘발의안 47’이 원인이다. 이 발의안은 950달러 미만의 절도 죄에 대해선 중범죄로 기소하지 않는 조항이다. 경범죄자까지 감옥에 넣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지므로 여기서 아낀 비용을 다른 곳에 사용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찰들이 상점의 물건을 훔쳐가는 범인을 발견해도 950 달러 미만의 벌금딱지를 부과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었다.

발의안 47은 마약문제도 키웠다. 이 발의안에는 마약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처벌받는 것을 비범죄화했다. 이미 비범죄화된 대마초와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니 약물오남용에 빠진 이들에게 치료를 강제할 방법이 사라져버렸다.

개발과 성장을 가로막고, 평등만을 추구하는 정책도 샌프란시스코 주민들 반발를 사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샌프란시스코 주택공급을 막는 정책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다이앤 펠스타인 현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 시장으로 지내던 1980년 대에 3층 이상의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난개발을 막고 도시미관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후 샌프란시스코는 주택공급 부족으로 높은 임대료가 지속되고 있다. 노숙자가 많은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벤처캐피탈인 세콰이아 캐피탈의 마이클 모리츠 전 회장은 지난 2월 뉴욕타임스에 ‘나 같은 민주당원도 샌프란시스코에 지쳤다’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이) 추구했던 대의명분은 시 정부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방법을 아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무력화되었고 도시가 소수의 횡포에 휘둘리고 있다”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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