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장애인은 하고 싶은 일도 못해야 하나요

한겨레 2023. 9. 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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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게티이미지뱅크

김희찬(가명) | 30대 남성 장애인

10년 전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쳤다. 대형 기계를 제작하는 곳이었는데 계단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져 무릎 아래로 조금 다친 줄 알았다. 그런데 초기 처치가 잘못됐는지 상처가 덧나면서 여러번 수술을 거듭한 끝에 한쪽 다리를 절단하게 됐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섯살이었다. 공장 쪽에서는 산재처리를 안 해주려고 ‘평생 책임져 주겠다’ ‘회사 문 닫아야 한다’며 어르기도 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른 형님들이 다쳤을 때도 ‘책임져 주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누워 있는 나를 취재차 찾아온 기자 앞에서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요?”라며 울기도 했다.

절단한 다리에 의족을 하고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장애는 있지만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힘들고 아팠지만 끝내 해냈다. 걷기가 달리기가 되고 마라톤에도 도전해 완주했다. 등산도 했는데 낮은 산은 다닐 만했다. 그렇게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산재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심리상담을 해주는데 장애등급 같은 이야기만 해 지쳤다. 직업훈련도 내가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을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컴퓨터 아니면 목공 일이었다.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다리는 불편해도 힘쓰는 일을 잘할 수 있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포털에서 ‘장애인고용’을 검색해 전화해 와 보라는 곳에 서류도 들고 찾아가기도 했다. 막상 가보면 내 일이 아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일들뿐이었다. 장애인고용지원금을 받으려 구인공고를 낸 회사들 같았다.

장애인 고용으로는 취직이 어려울 것 같아 일반 일자리에 지원해보기도 했다. 학교에서 경비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전화했더니 와 보라고 했다. 걷는 모습을 보더니 “다리가 불편해요?” ‘예. 일하다 다쳐서 의족을 했습니다.’ “아 그럼 학교는 안 돼요. 아이들이 무서워하면 어쩌라고.” 잘할 수 있는 일 같은데…. 마음이 안 좋았지만 별수 없었다.

새벽 인력사무소에도 나가봤다. 2층 인력사무소에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 하나둘씩 하루 일거리를 받아 나갔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건설 현장에서 벽돌도 질 수 있고 하라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나를 불러주는 이는 없었다.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 갔다.

편견은 일터에서만이 아니었다. 지하철 장애인석에 앉아 있다가 “멀쩡한데 왜 장애인석에 앉아 있냐”는 얘기를 듣고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의족이 보여야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반바지를 입어도 늘 앉아 가는 것은 아니다.

2019년 봄, 아는 형이 장애인 운동선수를 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다치고 장애인 운동선수를 하던 형이었는데, 등록하면 나라에서 훈련도 지원해주고 급여도 준다고 했다. 그렇게 장애인 체육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체계적인 훈련이나 제대로 된 운동선수 대우 같은 건 없었다. 의족을 한 채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파서 쉬어야 한다. 출퇴근 시간 버스나 지하철에서 오래 서 있으면 절단 부위가 너무 아픈데 교통비 지원은 없었다. 거리가 먼 지역에서 열리는 시합도 알아서 가야 했다. 장애인 체육선수 급여도, 정해진 금액도 있고 예산도 있을 것 같은데 들쭉날쭉했다. 코로나 때는 훈련하던 공공체육시설이 문 닫자, 나가지 못한 만큼 급여도 나오지 않았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적은 액수였지만, 못 받으니 생활이 어려웠다.

내가 선수로 등록된 지자체는 장애인 체육대회가 가까워져 오니 그제야 연락해서는 대회에 참가하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대회에 나가지 않을 작정이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그만두려고 한다. 어린 여성 장애인들에게 함부로 하는 코치들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장애인 체육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 모습에 무력감이 느껴진다.

지난 6월,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최근 집 근처 스포츠센터에서 새벽에 문을 열고 비품 등 정리정돈할 사람을 찾는다고 해 사장과 면담했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했더니 “노력해온 모습이 대단하다”며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이 된 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게 됐다. 새벽 5시 출근해 센터 문을 열고 이용자들에게 운동법도 알려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내게 맞는 일을 찾은 것 같아 다행이다. 이 일자리가 오래가길 바란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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