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앞에 다시 근조화환···“교사들은 집단 우울증 상태나 다름없다”[현장]

강은 기자 2023. 9. 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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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의 A초등학교에 3일 마련된 교사 B씨(38)의 추모공간을 방문한 어린인가 헌화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지난 7월 사망한 교사를 향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동안 서울의 또 다른 초등학교 앞에도 교사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의 49재를 나흘 앞둔 지난달 31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교사가 스스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교사들의 마음 속은 단지 슬픔을 넘어 분노와 비통함으로 가득찬 듯해 보였다. 3일 경기도 분당에서도 용인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주말을 맞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교사들은 집회 뒤 늦은 시각까지 양천구의 초등학교를 찾아 절절하고 애통한 마음을 표출했다. 주말 초등학교 앞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얼마나 더 죽어야 바뀔 것인가”“교육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라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다.

3일 오전 양천구 목동에 있는 A초등학교 앞에는 담장과 운동장을 둘러싸고 수백 개의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었다. 정문 인근에는 방문객들이 손글씨로 쓴 포스트잇 등이 빼곡히 붙어 ‘추모의 벽’을 이뤘다. 지난 7월 숨진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붙었던 추모 현수막은 고스란히 이 학교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현장을 지킨 동료 교사 등에 따르면 전날 하루에만 추모객 2000여명이 이 학교 앞을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다.

교내에 설치된 분향소 인근은 동료 교사들의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20년 이상 경력의 초등교사 유모씨(48)는 “서초구 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또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됐다”면서 “(학교에 추모 화환이 늘어선) 이 광경을 다시 보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대로면 돌아가시는 선생님이 또 나올 것”이라며 “교사들이 집단으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A초등학교에 3일 마련된 교사 B씨(38) 추모공간을 방문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며 추모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교사들은 “슬픔보다 분노가 더 커졌다”고 했다. 유씨는 “교육부가 ‘공교육 멈춤의 날’ 움직임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겁박을 하고 있다”면서 “징계할 거면 해라. 교사들은 잃을 게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 정모씨(47)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면서 “교사를 지켜야 할 교육부는 대체 어디에 있나”라고 했다.

교육부는 일부 교사들이 서이초 교사의 49재가 치러지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하고 대규모 추모 집회를 예고하자 이를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교사들을 중징계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사들은 “교사와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직권남용”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교사들은 매주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고 국회 차원의 법 개정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자발적으로 진행해 왔다.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7차 추모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20만명에 이르는 집회 인파가 몰렸다. 주최 측 관계자는 “지방에서 버스 500대를 대절했고, 제주도 등 섬 지역 교사를 위한 비행기 지원 좌석 수도 2대 규모로 마련했다”고 밝혔다.

서울 양천구의 A초등학교 정문에 3일 교사 B씨(38)를 추모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 있다. 한수빈 기자

☞ “전국에서 버스 타고 왔다”…‘공교육 멈춤’ 앞두고 교사 20만명 집결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021526001

이들은 ‘안전하게 교육할 권리’를 요구했다.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라는 서모씨(32)는 “반 아이 한 명이 난동을 부리기에 손목을 부여잡았다가 (아이가) 할퀴는 일이 있었다”면서 “학부모가 교사를 지지해줬지만 운이 좋았을 뿐, 언제까지 운에 기대 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30년 경력의 퇴직 교사이자 양천구 A초등학교 전 학부모라는 송모씨(58)도 “홀로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는 선생님들이 몇년 전부터 늘었다”면서 “교사가 실수라도 하면 극한으로 몰아붙여 돈으로 해결하든지 아니면 무릎 꿇고 사과하라는 학부모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3대째 교사 집안인데 자식이 교사 되겠다는 걸 말렸다”면서 “제자들이 교사 됐다고 연락이 와도 기쁘지 않다”고 했다.

사망한 양천구 A초등학교의 교사 B씨(38)의 발인은 3일 오전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B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7시34분쯤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초등교사노조연맹 등 교원단체의 설명을 종합하면, 교직 경력 14년차인 이 교사는 6학년 담임을 맡았다가 5월 중순부터 병가와 연가를 연달아 썼으며 7월15일부터 8월31일까지 ‘질병 휴직’에 들어갔다. 지난 5월에는 학교에서 어지럼증을 호소해 조퇴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학교 관계자는 “고인이 (병가를 내기 전) 해당 학급에 학교장 종결로 처리된 학교폭력 사안이 있었다”면서 “다만 종결 이후에도 관련 학생으로부터 계속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등의 내용은 보고받은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또 “고인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게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적은 있지만 학부모 민원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고인이 맡고 있던 학급에 새로 배치된 담임 교사에 대한 보호조치도 요구하고 있다. 사망한 교사가 있던 학급에는 지난 1일자로 이 학교에 발령된 신규 교사가 담임으로 배치됐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지난 2일 서울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을 방문해 새 담임 교사에 대한 지원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A초등학교는 서울시교육청과 협의해 교사들이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4일 임시휴업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양천구의 A초등학교에 마련된 서초구 교사 추모 현수막이 3일 양천구 교사 B씨(38)의 추모 현수막으로 글자가 바뀌어 덧대 있다. 한수빈 기자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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