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고려인들의 홍범도 애도
“야 이놈들아/ 내가 언제 내 동상 세워달라 했었나/ 왜 너희들 마음대로 세워놓고/ 또 그걸 철거한다고 이 난리인가”
국방부가 지난달 31일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결정하자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가 다음날 페이스북에 올린 자작시 일부다. ‘홍범도 장군의 절규’라는 제목의 시는 “내 뼈를 다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보내주게. 나 기다리는 고려인들께 가려네”라며 끝난다. 홍 장군이 흉상 철거를 봤다면 느꼈을 심경을 적은 것이다.
‘날으는 홍범도’로 불린 홍 장군은 독립영웅이다. 그는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에 정착했다. 고려인들의 큰 어른 역할을 하다 1943년 숨졌다. 고려인들은 장군의 묘역을 조성해 ‘민족 지도자’로 기려왔다. 옛소련 붕괴 후 남북은 서로 홍 장군 유해를 봉환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2021년에서야 홍 장군의 유해가 돌아와 대전현충원에 안치됐다.
그렇게 어렵게 유해를 모셔놓고 이제 와서 ‘빨갱이’로 몰아세우니 고려인들은 가슴을 칠 일 아닌가. 지난 1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이 흉상 이전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홍범도 장군 공산당 이력이 문제면 내 가족과 고려인 동포 50만명도 모국의 적인가’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에도 고려인마을이 있다. 이 마을 ‘홍범도 공원’에도 장군 흉상이 있다. 3일 장군의 흉상 앞에는 국화꽃 다발이 놓여 있었다. 홍 장군은 이 마을 고려인들의 자부심이었는데, 요 근래 정부 움직임에 속 태우고 걱정도 많다고 한다.
홍 장군은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된다면 꼭 나를 조국에 데려가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토록 원했던 독립된 조국에 돌아왔지만, 현실에선 그를 두고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과 교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홍 장군은 50만 고려인들의 집단적 정체성의 상징이기도 하다”며 “이를 모독하는 게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되느냐”고 했다. 이 지적을 윤석열 정부는 무겁게 새겨들어야 한다. “홍범도 장군 모셔갔으면 제대로 모셔라”라는 먼 이국땅 고려인들의 외침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고려인들에게 참으로 면목이 없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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