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위의 노조…회삿돈 끌어다 경품행사, 283명 불법임금 지급도
정부가 대기업의 노동조합 운영 실태를 점검해보니 한 회사에선 노조위원장의 대리운전 비용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300만여 원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다른 기업에서는 노조 간부의 이·취임식 행사 때 사용할 경품을 사는 데 회삿돈 500만원을 지원했다. 이 밖에도 자판기나 매점 운영권을 노조에 주는 등 운영비를 보태주거나 출장·워크숍 등에 수천만 원을 지원한 곳도 다수 적발됐다. 기업들이 노조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거나 강성노조 등장을 막기 위해 사실상 결탁하고 있는 비정상적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다.
근로자대표에게 노사교섭·사내 근로자 고충처리 등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관련 활동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제도' 역시 불법의 온상이었다. 조합원이 1만4000명인 A공기업은 근로시간 면제 인원 한도가 32명이지만 실제로는 315명(파트타임)을 인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최소 283명이 노조에서 불법적으로 임금을 받은 셈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공기업은 서울 지하철 대부분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이 900여 명인 국내 B은행은 노조 활동을 업무로 인정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을 법정 기준의 2배 가까이 어겼다.
윤석열 정부가 노동개혁의 선결 과제로 '노사 법치주의 확립'을 꼽은 가운데 노사관계 현장 점검에 나섰다. 실태조사에서 법률 위반이 드러난 약 2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또 규모별·업종별로 상시 근로감독을 확대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등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져버린 비정상적 노사관계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3일 고용노동부는 지난 5월 31일부터 3개월간 근로자 1000명 이상 사업장 중 노조가 있는 사업장 521개소를 대상으로 근로시간 면제 제도와 운영비 원조 사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관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480개소 중 총 68개소(14.2%)에서 근로시간 면제 한도 위반(63개소)과 무급 노조 전임자 급여 지원(9개소) 등 위반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사용자가 급여를 지급하는 근로시간 면제자는 총 3834명(사업장 평균 8명, 최고 315명), 연간 면제 시간은 총 450만여 시간(사업장 평균 9387시간, 최고 6만3948시간)으로 집계됐다. 풀타임 면제자의 월평균 급여 총액은 112억여 원(1인당 평균 637만6000원)이었으며, 최고는 무려 1400만원을 수령했다.
근로시간 면제는 원활한 노조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간부 등이 노조 대표 활동을 위해 쓰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제도다. 노조 규모에 비례해 근로시간 면제 '총 시간'과 쓸 수 있는 '인원'의 한도가 정해진다. 해당 한도 안에서 사용자는 면제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지만 이를 초과해서 지급하면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로 여겨져 사업주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의 대상이 된다. 다만 노조가 사용자에게 법적 근거 없이 지원을 요구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아 노조가 '노사 협의'를 명목으로 과도한 근로시간 면제나 지원을 요구해도 회사는 거절하기 어렵다는 부작용이 있다.
실제 고용부 조사에서 운영비 원조 주요 사례로 사무실 유지 비용 지원 외에도 대의원 대회 비용, 기념일 행사 비용, 차량비, 유류비, 통신비, 출장비, 해외연수비, 주거비, 노조 사무실 직원 급여 등 지원이 확인됐다. 일부 업체는 자판기 20여 대 운영권을 노조에 넘겨줘 운영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거나 차량 렌트비 등을 지원한 경우도 있었다.
고용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공 부문을 포함해 법 위반 의심 사업장 약 200곳을 대상으로 기획 근로감독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후 근로감독을 확대해 상시 점검·감독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정부는 근로감독 등을 통해 현장의 불법 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해 노사 법치를 확립하고, 약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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