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낳고 미혼 택한 무늬만 한부모들
정부 한부모 지원정책 역설
작년 혼인外 출생 9800명
전체 출생아의 3.9% 차지
30대 회사원 A씨는 결혼한 지 4년이 지났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아이를 출산한 뒤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남편과 상의한 끝에 마음을 바꿨다. 미혼모로 아이를 키우면 혜택이 많다는 주위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A씨는 "처음에는 아기한테 몹쓸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서류상으로만 미혼모니 차라리 경제적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지난달 아이를 낳은 30대 회사원 B씨도 사실혼 관계인 아내와 의논해 자발적 미혼부를 택했다. 아내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출생신고를 마친 그는 "나의 성과 본을 모두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선택에 큰 부담은 없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출산까지 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무늬만 미혼 부모'가 늘고 있다. 내 집 마련이나 정부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한 소득 요건을 맞추고자 자발적으로 미혼 가정을 택하는 것이다. 부정수급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비혼 가정의 복지 혜택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3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외 출생아는 9800명으로 전체 출생아 가운데 3.9%를 차지했다. 출생아 수가 해마다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상황에서 혼인 외 출생아는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혼인 외 출생아는 2020년 6900명에서 2년 새 42% 증가했다.
자발적으로 미혼 부모를 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줄어들고 정부의 경제적 지원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혼외자 아빠 등본에 출생신고'라는 게시글에 7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화제를 모았다.
"혼인 신고땐 청약조건·대출 불리"
정부는 미혼 부모를 포함한 한부모 가족에게 에너지 이용료 감면, 문화누리, 스포츠 바우처 등을 지원한다. 중위소득 60%(월소득 약 207만원) 이하 가정에는 월 20만원 수당도 준다.
부동산 청약을 할 때도 혼인신고를 안 하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공공분양 시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30%(846만원) 이하(맞벌이는 140%·911만원)만 가능해 대기업 맞벌이 부부는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다. 반면 1인 가구도 신청 가능한 일반청약은 월평균 소득 100%(651만원)가 기준으로, 1인당 소득 금액으로 환산하면 신혼부부 기준(약 455만원)보다 높아 고소득자에게 유리하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청약상 이점 때문에 많은 부부가 아이를 낳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무늬만 미혼 부모'가 미혼가정에 대한 정부 혜택을 부정수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실혼 관계일 때 미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등 제한을 두고 있지만 주소를 다르게 두면 사실혼 확인이 힘들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는 사례가 많다.
고소득자라면 기혼보다 미혼일 때 대출 조건이 유리한 점도 혼인신고를 주저하게 만든다. 주택 구매 시 받는 디딤돌 대출은 미혼의 경우 연소득 6000만원 이하면 가능하지만 신혼부부는 부부합산 소득이 7000만원 이하여야 하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는 게 상대적으로 불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부터 '신생아 특례 대출'을 도입해 부부합산 소득 기준선을 1억3000만원으로 높일 방침이다.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사회보장 법제가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가족 부양이나 돌봄 등 가족만이 그 주체가 된다"면서 "결혼의 방식이나 출산 환경 또한 선택 가능해야 하고 그로 인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평균 혼외 출생 비율은 1970년 7.4%였으나 1995년 23.9%로 상승했고 2020년에는 42%를 기록했다. 세계적인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명예교수는 "합계출산율 1.6명이 넘는 국가 중 비혼 출산율이 30% 미만인 국가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나은 기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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