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이위안 디폴트 넘겼지만…작동 어려워진 중국 부동산 성장 모델
3·4선 도시 주력…팬데믹에 휘청
부양책 막고 지방재정에도 빨간불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이 지난 1일 채권단 회의를 열고 이달 초 만기가 도래하는 약 7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상환 기한을 3년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는 가까스로 넘긴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갚아야 할 채권 만기가 줄줄이 돌아올 예정인데다 중국 부동산 시장이 구조적 침체에 빠져있어, 시장은 비구이위안이 결국 파산을 선언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은 껐지만 다음 불길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3일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비구이위안이 막아야 할 채권 원리금 총액은 157억200만위안(약 2조8600억원)에 달한다. 다음달과 연말, 내년 초까지 대형 채권 만기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 30일 공시에서 올해 상반기에 489억위안(8조9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31일 비구이위안의 신용등급을 디폴트 임박 상태인 ‘Ca’로 강등했다.
비구이위안이 견실한 경영 상태를 유지하며 당국의 방침을 잘 따르는 ‘모범생’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가 주는 충격이 크다. 부동산을 지렛대로 삼아온 중국 정부의 혼합경제 모델이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구이위안은 1992년 광둥성 포산(佛山)에서 설립됐다. 2015년부터 노후주택과 빈민가를 재개발하는 ‘판자촌 개조사업’에 뛰어들면서 몸집을 크게 불렸다. 2021~2022년 매출 기준 중국 100대 개발사 중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서 310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20년 8월 중국 당국이 강도 높은 규제안을 내놓으면서 위기가 닥쳤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회사에 ‘선수금을 제외한 자산부채비율 70% 미만’, ‘순부채비율 100% 이하’ ‘유동비율 1배 이상’ 등 3개의 레드라인을 요구했다. 중국 부동산업체들의 무분별한 확장에 따른 버블 붕괴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국이 선제 대처에 나선 것이다. 2021년 9월 헝다(恒大·에버그란데)가 처음 직격탄을 맞았고, 비구이위안이 그다음 타자가 됐다.
비구이위안은 성장부터 위기까지 모두 중국 당국의 경제개발 정책과 맞물려 있다. 중국 정부는 1978년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했지만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이 부족했다. 중국 정부는 국가가 소유한 토지의 이용권을 일정 기간 민간에 판매하고 이 자금으로 인프라, 복지, 교육 등에 투자하는 방식의 전략을 사용했다. 중국식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혼합경제 모델이다.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과 급격한 도시화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지방정부와 토지 이용권을 사간 기업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되는 구조가 형성됐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30%는 부동산 투자가 차지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고용의 15%도 건설 등 부동산 관련 프로젝트에서 나왔다. 지방 정부 수입 중 토지 이용권 판매 비율은 40~50%에 달한다.
슝웨이(熊伟)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 4월 논문에서 “인프라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토지 이용권을 판매하는 것은 중국의 급속한 도시화와 경제 발전의 핵심 요소였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2010년대 중반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2022년 중국의 도시화율은 65%로 선진국의 80% 수준에 육박한다. 고령화로 인해 주택 수요가 줄어든 반면, 주택 가격은 크게 치솟아 청년들이 집 살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방정부는 부동산 개발을 부추겨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형성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경제실적을 당 간부 승진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비구이위안은 2020년부터 시작된 중앙 당국의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안과 코로나19 팬데믹이 맞물리면서 지방 중소도시(3·4선 도시)에서의 부동산 사업 수익률이 급격히 꺾이자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기간 토지 이용권 판매 수익은 2선 도시에서 -23%를 기록한 반면, 3선 도시에서는 -41.5%로 급감했다. 여기에다 중국 정부의 부채 관리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금 조달도 어려워졌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비구이위안 매출의 60%가 3·4선도시에서 나온다면서, 이 회사의 도산은 지역 서민주택 시장에 큰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부동산 위기는 중국 경제를 또 다른 악순환으로 몰고 있다.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경기침체가 심각하지만 중국 당국은 부동산 시장 거품과 지방정부 채무를 의식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최근 주택담보대출 등 주택구입 관련 각종 규제를 완화했지만 근본적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 부동산 시장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일부 지방정부의 자금조달용 특수법인인 LGFV들은 잇따라 디폴트를 선언하고 있다.
슝 교수는 “중국 경제가 새로운 성장 모델을 찾아야 하는 때”라면서 “수출과 부동산 외 내수 소비 진작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사회안전망이 취약해 인민들이 소비 대신 저축을 많이 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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