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데려올 방법' 고민할 때···日 '정착시킬 제도'로 빗장 확 풀어
日 생산가능인구 1000만명 줄자
외국인 노동자로 부족한 일손 채워
'韓고용허가제' 본따 단점은 보완
체류기간 제한 없애고 이직 허용
우수 인재엔 영주권 이상 혜택도
“쇼쿠지와 도우데시다카(식사는 어떠셨나요)” “오이시캇타(맛있었어)” “요캇타(다행이네요)”
1일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한 개호(노인 간호·돌봄) 시설에서 젊은 여성이 휴식 중이던 80대 할머니에게 물었다. 맛있게 먹었다는 대답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욕창 예방 쿠션의 위치를 조정했다. 일본 전역에 지점을 둔 이 시설은 한 달에 10만 엔(수도권 기준)이면 입소할 수 있어 가성비로 이름난 곳이다. 시설 곳곳에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을 돌보는 대다수의 실무자들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시설 관계자는 설명했다.
도쿄의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신오쿠보 지역에서는 한글뿐 아니라 힌디어나 아랍어·중국어로 적힌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오쿠보가 여러 문화가 뒤섞인 번화가로 발전하면서 일본 학계는 해마다 이 지역의 음식점 간판을 분석해 국가·민족별 비율을 연구하기도 한다. 아시아 제1의 경제 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일본 도쿄 곳곳에는 크고 작은 외국인 거주지가 형성돼 있다.
한국보다 이민에 폐쇄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일본이 바뀌고 있다. 부족한 일손이 ‘발등의 불’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로 1995년 8700만 명의 정점을 찍은 생산가능인구(15세 이상 64세 이하)가 지난해 기준 7420만 명으로 30년도 안 돼 1000만 명 넘게 감소했다. 이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182만 명(2022년 기준)을 넘겨 10년 전(62만 명)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6년 처음 100만 명을 돌파한 뒤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등 일본 3대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의 7%가 ‘외국인 노동자’라는 통계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발 빠른 변화가 사실은 한국의 고용허가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2018년 일본은 외국 인재의 수용·공생에 관한 각료회의를 통해 외국인 법률을 개정하고 한국 고용허가제의 결정적 단점인 숙련된 근로자의 체류 기간 제약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듬해 시작된 특정기능 비자 확대가 대표적이다. ‘특정기능’은 일손이 특히 부족한 개호(간호·돌봄), 농업·건설·조선업 등 12개 분야에 한해 외국인 고용을 대폭 늘릴 수 있도록 한 비자 제도이며 1호와 2호로 나뉜다. 1호의 경우 업종 내 이직도 가능하다. 2호 비자를 받으면 기간 제한 없이 일본에 체류할 수 있고 가족까지 동반할 수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장을 지낸 정기선 박사는 “이민에 보수적인 일본이 한국의 고용허가제를 벤치마킹해 오히려 더 개방적인 외국인 정책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정 박사는 “한국과 일본이 인력 송출 협약을 맺은 국가들은 대부분 겹치는데 외국인 노동자 입장에서는 체류 환경과 임금, 취업 조건이 좋은 나라를 택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이 여전히 외국인을 ‘데려올’ 고민을 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외국인에게 ‘선택받을’ 제도를 만들어 정착시켜갔다”고 지적했다.
고학력 연구자와 기술자를 유치하기 위한 일본의 ‘고도인재비자’는 양질의 해외 우수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또 다른 장치다. 지난해 말 누적 기준 지금까지 3만 8014명의 고학력 연구자·기술자·경영인들이 고도인재비자를 통해 일본의 새로운 인력으로 거듭났다. 고도 인재의 절반 이상은 중국이지만 한국도 인도 다음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한 나라로 분류된다. 한국이 해외 인재를 끌어오기는커녕 일본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일본은 고도 인재들이 영주권 취득을 넘어 귀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발판도 마련했다. 아이를 키우는 30대 초중반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일본인에게도 엄격하게 제한된 외국인 가사도우미 채용도 허용했다. 또 어린아이를 키워야 하는 경우에 한해 본국에서 부모를 데려올 수 있도록 했다. 영주권자조차 누릴 수 없는 혜택이다. 학술 분야에서 고도인재비자를 취득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 김 모 씨는 “고도인재비자는 신청 단계부터 ‘우선 처리’라는 대우를 받는다”며 “일반 취업 비자보다 체류 기간이 길뿐더러 영주권 취득 때도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고도인재비자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한 최 모 씨도 “서류 작성 단계에서부터 일본 정부가 고도 인재를 우대한다는 게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고 전했다. 이들 모두 일본에서 학부는 물론 석·박사까지 따게 된 이유로 ‘정착하기 편리하다는 점’을 첫손에 꼽았다.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등교육과 취업을 연계한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조영희 이민정책연구원 연구교육실장은 “우수 인재 이민 정책은 비자 정책의 유연성과 개방성 외에도 한국에서의 정착과 통합을 돕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와 정주 환경 개선 등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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