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시평] 권력과 진보

2023. 9. 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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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진보의 관계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권력'
기술로 '더 좋은 세상' 되려면
건강한 기술견제세력 있어야
'기술=진보' 동일시로는
AI 잠재위험 극복 어려워

한국 사회의 Al 대응 논의가 흥미로운 점은 엘리트의 일관된 기술 낙관론이다. 일부에서 고용, 인권, 프라이버시, 다양성, 공공성, 책임성, 안전성, 투명성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지적하지만 정부는 Al 경쟁력에 우선순위를 둔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 존엄성, 사회 공공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하는 정도다. Al 과학자들도 다르지 않다. 실업 문제의 해법으로 피해자 보상과 기술 재교육을 강조하지만 그것은 정부의 일로 미룬다.

기술 낙관론이 강한 이유는 산업화 성공 신화다. 한국이 1960년대 이후 기술산업으로 성공했고, 앞으로도 기술 경쟁력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인식이다. 엘리트 사회 전반에 '기술=진보'라는 낙관론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일반 시민은 다르다. AI가 과거의 기술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미국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배우와 작가들이 Al 기술 도입에 항의해 파업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Al의 고용 대체는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번은 다르다는 느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해 답답한 것이 일반인의 솔직한 심정이다.

다행히 최근 Al 확산을 우려하는 일반인에게 명확한 대응 논리와 비전을 제시한 책이 나왔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사이먼 잭슨 미국 MIT 교수가 공저한 '권력과 진보'다. Al 대응 방법을 기술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고, 과거 사회가 어떻게 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극복했는지 설명한다.

기술과 진보의 관계에서 두 교수가 주목한 변수는 권력이다. 기술 주도 세력과 기술의 잠재적 피해 세력이 권력 균형을 이루어야, 즉 기술 견제 세력이 '건강'해야 기술을 번영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세기 전반기 자동차 산업이다. 미국 사회가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동화 기술이 노동자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업무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적용되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이 고용을 확대하고 중산층 소득을 높인 산업으로 발전했다. 자동차 기술의 반대가 중세사회 농업 기술이다. 고용주에 예속된 중세 농민은 기술의 혜택이 영주와 상인에게 집중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권력 구도가 기술과 번영의 관계를 매개한다는 애쓰모글루와 잭슨 교수의 '권력 매개론'을 AI에 적용하면 현재와 같이 소수의 대기업과 투자회사가 주도하는 과두 체제로는 사회 전체의 진보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도달한다. 대안은 노동, 조세, 플랫폼, 교육개혁을 통해 노동자, 시민과 같은 견제 세력의 권한과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이다.

권력 매개론의 한계도 보인다. 이 이론은 Al 권력 경쟁을 20세기 이념 구도인 자본과 노동의 대립으로 설정하고 노동의 관점에서 Al 대응책을 제시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창조산업과 크리에이터 산업을 개척하는 크리에이터와 프리랜서를 분석에서 배제한다.

만약 플랫폼 경제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와 개발자에게 Al 대응책을 질문한다면 그들은 노동조합보다는 기술에서 대안을 찾을 것이다. 불안한 기술에 대한 지속가능한 대응은 더 좋은 기술이다. 정보 생산과 사용에서 개인의 역할을 확대한 1980년대 PC 산업이 정부와 대기업 중심의 메인 프레임 컴퓨터 산업을 대체한 것이 고전적인 선(善)기술 대응 사례다.

'권력과 진보'는 올해 나온 신간이다. 그 반향을 평가하긴 아직 이르다. 이 책에 쏠린 관심이 현재 기술에 만족하지 않고 공동체에 더 좋은 기술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새로운 기술 문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모종린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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