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노동자 ‘씻을 권리’ 의미있는 조명…갈등 사안엔 다양한 관점 담길
배달라이더 등 동행취재 인상적
서초구 교사 사망사건 관련
교육활동 보호문제 취재도 좋아
단발성 기사들 많아 아쉬워
현 정부 ‘노조 때리기’ 이유 등
큰 맥락서 유기적으로 연결 필요
여러 입장 담아 평면성 넘어서길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교육·노동·연금 개혁을 국정 최우선 목표로 제시했다. 이 ‘3대 개혁’ 가운데 교육·연금은 거의 진척이 없는 반면, 노동은 윤 대통령의 각별한 ‘후원’ 아래 속도를 높여왔다. 문제는 노동개혁이 노동시간 유연화, 실업급여 축소 등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겨레가 ‘윤석열표 노동개혁’을 앞장서서 비판해온 이유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11기 열린편집위원회 네번째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노동 보도를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는 제정임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 심창식 <한겨레:온> 편집위원, 이예진 경상국립대 학생(전 경대신문 편집장),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장,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이 참석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이주현 뉴스룸국 뉴스총괄, 전정윤 뉴스룸국 인사교육부국장, 전종휘 사회정책부장이 참석했다.
제정임 오늘 회의에서는 한겨레의 노동 분야 보도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준형 한겨레는 지속적으로 노동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진보적 시각에서 보도를 해온 언론사다. 최근에는 ‘폭염 속 노동’, 청소노동자의 ‘씻을 권리’ 등 노동 문제를 존엄한 삶과 연결지어 다루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토요판에 연재되는 박수정 작가의 ‘오늘, 여성노동자’,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의 ‘까칠한 갑질상담소’는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와닿는 방식으로 노동 문제를 다뤄 줘서 좋았다. 다만, 한겨레 노동 기사에서도 맥락적 보도가 부족해 좀 아쉬웠다. 예컨대, 윤석열 정부 들어 ‘노조 때리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를 한국 사회에서 노조, 그리고 노동운동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등 큰 맥락에서 살펴봤으면 한다.
이윤소 폭염 속에서 일하는 배달 노동자 동행 취재 기사처럼 노동 현장을 발로 뛰면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기사들이 있어서 좋았다.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기간제 교사와 방과후 강사 등 비정규직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문제를 다룬 기사나 찜통 더위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을 보여준 기사도 인상적이었다. 한겨레가 다양한 분야의 노동 기사를 다루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앞으로도 일반 시민들이 만나보기 어려운 분들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심창식 한겨레가 서민·노동자 기반으로 탄생한 신문이라서 노동 이슈만큼은 자신감 있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분도 말씀하셨지만, 배달 라이더 기사와 청소노동자의 씻을 권리 기사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동행 취재를 통해 노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매우 돋보이는 기사였다.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 일을 하는 분들이 어떤 조건에서 노동을 하는지를 잘 보여줬다. 1면에 비중 있게 다룬 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이예진 실업급여 문제를 다룬 기사 중에 문답 형식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기사가 있었다. 기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노동 문제를 다룰 때, 낯선 용어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정부의 정책과 한겨레가 취재하게 된 이유를 잘 연결해서 써주면 젊은층도 쉽게 노동 이슈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한겨레 사이트의 ‘노동’ 카테고리에 있는 기사들을 죽 훑어봤다. 한겨레가 몇 년 전에 했던 ‘노동orz’ 기획 같은 울림 큰 기사들을 기대했는데 단발성 보도가 많더라. 개별적으로 분산돼 있는 단발성 기사들을 유기적으로 엮어서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김종진 ‘주 69시간 노동’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겨레가 문제점을 잘 지적하면서 적절하게 제동을 걸어줬다. 정부가 개편을 추진하는 실업급여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다뤄주기를 당부한다. 정부의 개편 방향(보장 축소)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기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최저임금 논의 때 종종 했던 것처럼, 그래픽을 활용해 한국 실업급여의 보장성(수급 기간, 액수, 적용 대상 등)을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서 보여주면 어떨까 싶다. 정부가 추진하다 논의가 실종된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옥외 노동자의 온열질환 문제를 포함한 ‘기후위기 시대의 노동’ 이슈에 대해서도 기획기사로 다뤄줬으면 좋겠다. 정부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추진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생산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로 인해 이주노동자 문제가 앞으로 이슈가 될 것 같다. 그들이 차별받지 않는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게 뭔지에 대해서도 한겨레가 다뤄줬으면 좋겠다.
제정임 다른 언론이 외면하는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겨레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기자가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면서 쓴 노동 기사들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내·외부 칼럼에도 치밀하면서도 대안에 접근해가는 글들이 많았다. 몇 가지 유념해 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우선, 사안을 평면적으로 다루는 기사가 좀 많은 것 같다. 좀 더 다양한 관점을 넣어서 입체적으로 다뤘으면 좋겠다. 예컨대, 최근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문제를 다룬 기사가 실렸는데, 한 노동단체의 보도자료와 변호사가 취재 소스의 전부더라. 중요한 문제인데, 한쪽의 입장만 전달되니까 ‘그런데 왜 안 되고 있는 거지’와 같은 추가 논의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현장 노동자의 목소리, 사용자와 정부의 입장을 두루 담아 기사를 쓰면, 독자들이 ‘안 되는 이유가 그런 거였구나’, ‘해결되려면 이런 논의가 더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생산적인 논의를 촉발할 수 있다. 또 기사를 읽다보면, 어려운 개념이나 법률, 통계 등을 그냥 툭 던지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전종휘 기사를 꼼꼼히 읽고 조언을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오늘 나온 지적들은 저희들도 매일 고민하고 있지만 제대로 못하고 있는 부분이다. 정책 기사는 용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기자가 ‘통역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스를 맥락 속에서 다뤄야 하고, 한 기사에 다양한 관점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마감 시간 등 현실적 제약이 있지만, 저희가 반드시 해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제정임 제한된 시간에 많은 기사를 써내야 하는 현장 기자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뉴스룸국의 리더십이 중요한 거다. 독자들이 단편적인 기사보다는 입체적인 기사를 원하는 상황이라면, 뉴스룸국 차원에서 우리가 오늘 어떤 이슈에 집중할지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기자들이 거기에 맞춰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
전정윤 기자들이 맥락과 현장성, 다양한 관점이 담긴 기사를 쓸 수 있도록 취재 시간 등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뉴스룸국 간부들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녹취 김해정 노동교육팀 기자
열린편집위원들의 ‘단소리 쓴소리’
열린편집위원들은 그달 주제에 대한 논의가 끝난 뒤, 한겨레의 논조와 기사 쓰는 방식, 뉴스 서비스 등 콘텐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독자 눈높이에서 비판과 제언을 쏟아냈다. 회의에서 나온 위원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원자력산업 종사자 30만명을 대상으로 벌인 국제 공동연구팀의 역학조사 결과를 다룬 기사가 온라인에만 실리고 지면에는 빠져 있더라. ‘저선량 방사선도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준치 이하의 방사선은 문제 없다'는 원자력계의 주장을 실증연구를 통해 반박한 것으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과학적 논쟁에서 중요한 근거로 쓰일 수 있는 연구 결과인데, 뉴스룸국 논의 과정에서 그 중요성이 간과된 것 같다.”(제정임 위원장)
▪“‘2023 청년정치 보고서’ 기획은 좋은 기사였지만, 현역 청년 정치인 또는 정치에 관심 있는 청년 입장에서 서술된 것 같아서 아쉬웠다.”(김종진 위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최근 몇달 동안 전국을 돌며 시국미사를 열었는데, 한겨레마저 너무 소홀하게 다뤘다. 사제단과 시국미사가 그간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기획기사로 한번 다뤄줬으면 좋겠다”(심창식 위원)
▪“온라인에서 ‘씻을 권리’ 기사들을 읽다 보니 현장 영상 2개가 기사에 물려 있던데, 지면에 그 영상들을 볼 수 있는 큐아르(QR)코드를 넣어줬으면 어땠을까 싶다.”(이예진 위원)
▪“경찰이 신상공개를 결정한 범인들의 얼굴을 한겨레가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개하지 않는 이유를 기사 하단에 적어줬으면 좋겠다. 검찰 특활비 기사에 ‘눈먼 돈’이라는 표현이 보이던데, 이런 말은 언론에서 쓰지 않기로 한 거 아닌가?”(이윤소 위원)
열린편집위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8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24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씻을 권리’ 기획과 배달 노동자 동행 취재 기사였다.
1. ‘씻을 권리’ 기획
사회부 박지영 곽진산 윤연정 김가윤 기자
한줄평: “너무나 당연해서 권리로 여기지 못했던 씻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기사” “기본권이자 건강권인 ‘씻을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조명”
2. ‘폭염 속 노동’ 배달 라이더 소진옥씨 동행해보니
사회정책부 장현은 기자
한줄평: “보호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비애” “폭염 속 배달 노동의 현실 생생하게 조명”
3. 2023 청년정치 보고서
정치부 임재우 선담은 이우연 손현수 강재구 기자
한줄평: “소모품으로 활용되는 ‘청년’과 ‘청년 정치인’”
4. 교화는 없고 엄벌만, ‘무차별 범죄’ 키웠다
사회부 오연서 권지담 이지혜 기자
한줄평: “강한 처벌이 ‘무차별 범죄’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점과 예방·교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징벌 시스템을 설득력 있게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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