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신약 개발의 용기

2023. 9. 3. 17: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세상에 없던 약을 만드는 신약 개발은 0.01%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무모한 도전'이다. 많은 제약바이오 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단체의 회장으로서 현장의 고뇌와 육성을 접할 기회가 잦다. 최근 바이오 기술 교류 현장에서 만난 한 CEO는 '회사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업의 숙명'을 토로했다. "올림픽은 참가만으로도 의미를 둘 수 있는데, 신약 개발은 그렇지 않다. 신약 개발은 실패하면 회사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혁신적 신약의 부가가치는 엄청나지만 그만큼 개발 도전에 따른 위험 부담도 큰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제약바이오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제2의 반도체로 키우겠다고 연신 육성 지원 의지를 밝히고 있다. 산업계의 신약 개발 의지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제약바이오업계에 '이룸의 법칙(Eroom's Law)'이라는 것이 있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라는 용어의 영문 철자를 거꾸로 표기해 만든 조어인 셈이다. 이룸의 법칙은 신약을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연구개발 예산이 약 9년 단위로 2배로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투입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개발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니 기업을 짓누르는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연 매출 1조원의 제약바이오 기업이 있다. 영업이익률이 10%라면 연 1000억원을 번다. 그런데 이 돈을 10년 동안 연구개발(R&D)에 모두 쏟아붓는다 해도 신약 개발에 성공할지는 불확실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급변하는 시장 환경, 정책적 변수 등을 극복해가며 신약 개발의 종착지에 도착할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또 자본의 열세로 인해 신약 개발 레이스에서 완주하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중도에 신약 기술을 글로벌 제약사에 이전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게 대부분의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래서 신약 개발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을 살리는 신약 개발에 모든 것을 거는 제약 기업인들의 용기가 만용으로, 실패로 귀결되지 않도록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우리 사회 모두의 응원이 절실하다. 국가는 신약 개발 지원 전략을 수립하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R&D 자금 지원 확대와 지원 방식 변화, 세제 지원, 국내 개발 신약에 대한 가치 인정과 같은 정책들이 도전의 용기가 싸늘하게 식지 않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세계적 제약바이오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미국조차 mRNA 백신 개발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한 이유이다.

우리 정부도 최근 바이오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지정해 연구개발 지원과 세제 지원 등을 확대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백신 등 바이오도 중요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강점을 갖고 있는 합성화학 신약 분야도 추가로 포함된다면 투자는 보다 활성화되고, 산업 경쟁력은 강화될 것이다.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와 혁신, 정부의 전폭적인 육성 지원 등이 어우러진다면 '신약 개발 성공의 생태계'가 꽃을 피우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한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