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병자’ 전락한 독일…“닮은꼴 한국에 시사하는 바 커”
독일 경제가 올해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럽의 강국’에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독일의 경기 부진은 경제 구조가 ‘닮은꼴’인 한국에 주는 시사점도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고령화에 따른 노동공급 부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 미국유럽경제팀은 3일 발간한 ‘국제경제리뷰–최근 독일경제 부진 배경과 시사점’에서 한국과 공통점이 많은 독일 경제가 적극적인 첨단산업 지원과 이민자 유치 노력 등에도 불구하고 주요 7개국(G7) 가운데 올해 유일하게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1분기 -0.1%, 2분기 0.0%(전기 대비)를 기록했다.
독일 경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과거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높은 중국 의존도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유로 지역의 성장률은 1.5%에서 0.8%로 떨어진 반면, 독일은 임금이 낮은 동유럽으로의 생산기지 이전과 대중국 수출 확대, 실질실효환율 절하,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성장률이 0.5%에서 1.7%로 오히려 올랐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제조업보다 첨단 정보기술(IT) 분야의 경쟁력이 중요해졌고, 중국이 2010년대 후반부터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독일의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있다. 제조업의 핵심 분야인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으로 전환되는 만큼 기존의 위상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동력 부족 우려도 크다. 보고서는 “최근 한국의 고령층이 노동공급 증가세를 견인하는 모습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의 노동시장 상황과 흡사하다”고 진단했다.
2000년대 이후 독일이 선택한 타개책 중 하나는 이민자 유입이었다. 독일은 2000년대 중반부터 인근 동유럽과 고령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장려하면서 실업률을 큰 폭으로 떨어트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에서 고령층(55∼64살)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2000년 43%에서 2018년에는 73%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 당시 유입됐던 고령층이 최근 들어 은퇴하기 시작했고, 이민자 역시 저숙련 근로자 중심으로 들어오면서 고숙련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화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여기에 독일 경제는 지난해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지고 정책금리 인상 기조도 맞물리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보고서는 “일각에선 이러한 경제 상황이 단기에 개선되기 어려워 독일이 다시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으로 에너지 안보에 위기감이 커지자 독일은 친환경 전환 계획을 비교적 엄격하게 준수하는 한편, 대규모 반도체 생산 지원책 등을 추진해 아시아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국 내에서 반도체 생태계를 육성해나갈 계획이다. 다만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종사할 숙련노동자 유입책은 다소 미흡한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도 제조업 비중과 중국 의존도가 높고,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가 크다는 점에서 최근 독일 경제 상황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에 대비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호한 고숙련 근로자 기반을 활용해 첨단산업의 생산성을 제고하고 산업 다변화와 친환경 전환을 성장잠재력 확충의 기회로 삼는 한편, 외국인 노동자 유입 등의 정책방안을 마련해 고령화에 따른 노동공급 부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고숙련과 저숙련 노동자별로 수급 상황에 맞춘 균형 있는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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