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메이커가 아닌 골잡이로…결국 ‘손톱’이 옳았다
개막 후 침묵을 지키던 ‘캡틴’ 손흥민(토트넘)의 득점포가 최전방 원톱으로 포지션을 바꾸자마자 불을 뿜었다. 토트넘에도,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에도 ‘손톱’ 작전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됐다.
손흥민은 2일 영국 번리의 터프 무어에서 열린 번리와의 2023~2024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폭발하며 팀의 5-2 대승을 이끌었다. 토트넘은 리그 개막 후 4경기 무패(3승1무)를 질주하며 맨체스터 시티(승점 12점·이하 맨시티)에 이어 리그 2위에 올랐다.
개막 후 줄곧 손흥민을 왼쪽 측면 공격수로 기용해왔던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이날 새로운 시도를 했다. 리그컵에서 골을 넣긴 했지만, 경기력이 여전히 좋지 못한 히샤를리송을 벤치에 앉히는 대신 손흥민을 최전방 원톱으로 기용하는 ‘손톱’ 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그러면서 손흥민의 본래 자리였던 왼쪽 측면 공격수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에 온 마노르 솔로몬을 배치시켰다.
경기 시작 4분 만에 번리에 선제골을 내줄 때만 하더라도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구상이 빨리 어그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반 16분, 손흥민의 환상적인 동점골이 터지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잡아 솔로몬에게 내준 뒤 다시 받은 손흥민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를 모두 속이는 오른발 칩슛으로 골문을 열었다.
손흥민의 골로 분위기 전환에 성공한 토트넘은 전반 추가시간 크리스티안 로메로의 골로 경기를 뒤집었다. 이어 후반 9분에는 제임스 매디슨의 중거리포가 그대로 상대 골문에 꽂히며 차이를 벌렸다.
이후 손흥민의 ‘쇼타임’이 시작됐다. 후반 18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솔로몬이 중앙을 향해 패스를 내줬고, 이를 손흥민이 침착하게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이어 3분 뒤에는 페드로 포로의 패스를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잡아 왼발로 골을 넣으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브렌트퍼드와의 개막전에서 동료들과 동선이 겹치며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손흥민은 이후 경기에서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며 팀 승리를 도왔다. 하지만 이날 번리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주인공이 돼 모두를 기쁘게 했다. 특히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남자축구대표팀 감독에도 이번 손흥민의 활용법은 큰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터진 손흥민의 득점포에 포스테코글루 감독도 미소를 지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은 중앙에서 뛰든, 측면에서 뛰든 모든 특징을 갖고 있다. 그는 어떤 시스템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다”며 “우리가 플레이하는 방식에서 그는 이상적인 선수”라고 호평했다.
현지 언론들도 찬사를 보냈다. 영국 ‘풋볼 런던’은 경기 후 손흥민에게 평점 10점 만점을 부여하며 “손흥민은 매우 효과적으로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시스템은 그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작동했다”고 했다. 영국 BBC도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톱클래스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손흥민은 4만여명이 참여한 EPL 공식 홈페이지 팬 투표에서 58.4%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맨 오브 더 매치’에도 뽑혔다.
손흥민은 경기 후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승점 3점을 얻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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