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갈 물리기 전에 진상규명”···군 내부고발자들이 본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수사 외압 의혹 등과 관련해 과거 군내 비리를 폭로했던 ‘퇴역’ 내부고발자들은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 개인에 대해 재갈을 물리기에 앞서 진상 파악과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군검찰은 박 대령에 대해 항명·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군사법원은 지난 1일 이를 기각했다.
1992년 군 부재자투표 부정 사례를 폭로했던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3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군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전형적인 재갈 물리기”라며 “국방부와 군 조직은 여전히 내부고발자가 나오면 사실 확인보다 신고자에 대한 폄하나 처벌, 징계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육군 중위로 복무하던 1992년 당시 14대 총선을 앞두고 군 내 부재자투표에서 상관들이 ‘여당 후보를 찍으라’며 공개투표를 강요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군에서 징계를 받고 파면됐으나 소송을 제기해 파면을 취소받고 중위로 전역했다.
이 이사장은 “나 또한 (30여년 전) 보고 들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운동권 사주’나 ‘빨갱이’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면서 “박 대령도 있는 그대로 사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항명’이라거나 ‘정치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들어야 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고 했다.
박 대령은 지난 7월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순직한 채 상병의 사망 원인과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1사단장 등 8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재한 사건자료를 지난달 2일 민간 경찰에 이첩했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직해임되고 ‘항명’ 혐의 등으로 수사받고 있으며, KBS 등 언론과 인터뷰한 뒤 ‘견책’ 징계를 받았다.
이 이사장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선후가 바뀌었다. 박 대령 수사부터 하는 것은 군인들에게 ‘이렇게 나오면 너희들 처벌할 것’이란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령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부터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구에서 사실관계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정치권도 (이번 사안을) 정쟁 도구로 사용할 게 아니라 팩트를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군 내부고발자들은 “군 당국이 다수를 위해 한 사람을 옭아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0여년 전 군 내 비리를 고발했던 장교 출신 A씨는 “군 당국의 수법은 당사자만 남게 하는 것이고 나 또한 다수의 선임이 침묵하는 모습에 가장 화가 났었다”면서 “한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조직이 똘똘 뭉치는 곳이 군이기 때문에 이들은 박 대령이 타협하고 포기하길 바랄 것”이라고 했다.
20여년 전 공익제보를 했던 공군 대령 출신 B씨는 “박 대령은 공익제보자와는 다르더라도 사회정의 실현 차원에서 진실을 알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면서 “(군 당국이) 집단의 일부를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됐다”고 했다.
이들은 소수가 조직에 맞서는 것은 ‘외로운 싸움’이라며 여론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A씨는 “지금은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지만 어느 순간 이슈가 묻히면 박 대령 혼자 남아 싸우게 될 수 있다. 그게 가장 무서운 것”이라면서 “아무리 (사안을) 억누르려 해도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진실공방을 벌이다가도 흐지부지로 끝나는 경우가 그간 많았지만 결국 나중에 남는 것은 진실”이라고 했다.
박 대령이 이끈 해병대 수사단이 권한 없는 수사를 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2009년 군납비리를 폭로한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은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군 수사당국은 군인 사망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박탈당했다”면서 “(해병대 수사단은) 사건 수사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수사 권한이 없는 기관에서 발표한 수사 결과는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소령은 지난달 13일 박 전 대령과 해병대 수사관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군검찰에 고발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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