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계 “이균용은 안 돼…아내 밟아죽인 남편이 고의 없다니”

이재호 2023. 9. 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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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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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새 대법원장 후보자가 가정폭력을 일삼다 끝내 아내를 밟아 숨지게한 남편을 ‘살인 고의가 없었다’며 항소심에서 감형한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 안팎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무시한 ‘위험한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성단체들은 젊은 나이를 이유로 아동 성폭행범을 감형한데 이어 가정폭력범 감형까지, 이 후보자가 가해자·남성 중심적 사고를 보이고 있다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3일 한겨레가 확인한 판결문을 보면, 2020년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형량을 징역 7년으로 줄였다. 1심은 ㄱ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했으나, 이 후보자는 살인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상해치사 혐의만 적용했다.

ㄱ씨는 2019년 2월7일 새벽 서울 중랑구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해 누워있던 아내의 복부를 여러 차례 밟아 복부 손상 등으로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지인과 술을 마시다 ‘아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해 술에 취해 누워있던 아내의 배를 3~4차례 힘껏 밟았다. ㄱ씨의 지인은 법정에 나와 평소 ㄱ씨의 가정폭력을 알고 있어 말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ㄱ씨가 아내를 밟으며 “잠깐만 있어봐. 이것 좀 죽여놓고”라고 답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살해할 고의가 충분히 인정되지 않았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이 후보자는 “ㄱ씨는 당시 피해자가 (알코올 중독으로 간·위 등의) 건강상태가 좋지않다는 것을 모르고 피해자가 견딜 수 있을 정도라고 착각하고 평소처럼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검찰과 ㄱ씨 모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법조계에서는 가정폭력 사건의 특수성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장윤미 변호사는 “가정폭력의 특성을 무시한 측면이 있는 판결이다. ‘(남편이) 피해자를 죽이지 않고 때리기만 하려고 했나보다’라고 보는건 상당히 위험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오선희 변호사 역시 “음주문제를 제외하곤 피해자와 사이가 좋았다고 판결문에 썼는데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가 학대를 빼면 좋은 부모였다’처럼 말이 되지 않는 문장이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이 후보자는 12살 아동을 성폭행한 혐의(미성년자의제강간과 아동복지법 위반)로 1심에서 징역 10년 형을 선고 받은 20대 남성 ㄴ씨에 대해 “개선·교화의 여지가 있는 20대 젊은 나이”라며 형량을 7년으로 줄여준 사실이 드러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일자 이 후보자 쪽은 “양형기준을 참고,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권고형의 범위 내에서 신중하게 형량을 정했다”고 해명했다.

여성계는 대법원장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송란희 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상습적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으로 봐야하는데, 이 후보자는 오히려 반대로 판단했다. 이 후보자의 판결은 일관성 있게 남성 중심적 시각을 드러낸다”며 “이런 분이 대법원장이 되면, 이후에도 가정폭력 사건이 감형되고, 무죄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제기된다. 한 수도권 고등법원 판사는 “논란이 된 판결들은 기본적으로 이 후보자가 성·아동·가정폭력 피해자가 입는 피해에 대해 공감하지 못함을 보여준다”며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되면 젠더의 관점에선 퇴보하는 하급심 판결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앞서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등 57개 여성단체는 “비판의 목소리에 자성하기는커녕 ‘(과거 판결은) 신중한 고민 끝에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해괴한 답변을 내놓은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과거 재판 과정에서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등 여성인권을 퇴행시키는 판결을 해온 이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라”고 윤석열 대통령에 요구한 바 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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