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홍범도 “우리의 적은 가면 공산당원” 발표…신원식 “홍범도, 뼈속까지 빨간 공산당원”

정충신 기자 2023. 9. 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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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1943년 사망후 지인들‘레닌의 기치’ 게재 ‘홍범도 동무를 곡하노라’ 부고장…“볼셰비키 당에 퍽 충직”
홍범도 발표 ‘고려 노동군중에게’ “우리의 적은 외홍내백(外紅內白· 겉만 붉고 안은 하얀)한 ‘가면 공산당원’들”
신원식 SNS 통해 “홍 장군 자유시참변 후 1921년 9월에 스스로 ‘고려공산당 간부’라고 했다”
1943년 10월 홍범도 장군 사망 직후 ‘강알렉세이’ 등 지인들이 ‘레닌의 기치’ 신문에 게재한 ‘홍범도 동무를 곡하노라’ 제목의 부고장. “홍범도 동무는 레닌-스탈린당의 충직한 당원으로서 연세가 높았음에도 사회사업에 열성있게 참가하시었다”며 “당의 사명을 꾸준히 실행하기에 정력을 아끼시지 않았다. 우리 조국과 볼세(셰)비키당에 퍽 충직하신 홍범도 동무는 자기의 생의 경로를 진실히 맞추고 길이 돌아가시었다”라고 기록됐다. 신원식 의원 페이스북 캡처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배경을 두고 당시 시대 상황에서 본인 의지와는 달리 독립운동가 동지들을 위한 행위 또는 독립투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 그리고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 정당을 조직한 이동휘의 감언이설에 속아 본인 의사에 반하여 가입한 것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홍 장군은 독립군 무장투쟁이 궤멸된 ‘자유시참변’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구경만 한 것이고, 소련 공산당 입당은 항일투쟁을 위한 방편이었다’는 이른바 ‘홍범도 무늬만 공산당원’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신 의원은 “홍 장군은 ‘무늬만 공산당원’이었다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뼈속까지 빨간 공산당원으로 볼셰비키였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관련 문헌 2건을 공개했다.

신 의원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은 육사 뿐만 아니라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 그리고 지향점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홍범도 장군의 1921년 대(對)군중 발표와 사망 당시 부고장은 그가 ‘무늬만 공산당원’이 아닌 ‘뼈속까지 빨간 공산당원’이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참변이 일단락된 후인 1921년 9월에 스스로 ‘고려공산당 간부’라고 했으며 ‘‘우리 고려 노동군중에게’라는 문건도 발표했다”고 밝혔다. 홍 장군은 이 문건에서 “우리의 적은 일본침략주의자 뿐 아니라 동족 내부의 관료 및 유산자, 외홍내백(外紅內白· 겉만 붉고 안은 하얀)한 ‘가면 공산당원’들”라고 했다. 이 내용은 장세윤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의 귀환, 그 시사점과 과제’에 기록돼 있다.

신 의원은 또 1943년 10월 홍범도 장군 사망 직후에 ‘강알렉세이’ 등 지인들이 ‘레닌의 기치’ 신문에 실은 ‘홍범도 동무를 곡하노라’ 제목의 부고장도 공개했다. 부고장에는 “홍범도 동무는 레닌-스탈린당의 충직한 당원으로서 연세가 높았음에도 사회사업에 열성있게 참가하시었다”며 “당의 사명을 꾸준히 실행하기에 정력을 아끼시지 않았다. 우리 조국과 볼세비키당에 퍽 충직하신 홍범도 동무는 자기의 생의 경로를 진실히 맞추고 길이 돌아가시었다”라고 회고한 내용이 기록됐다.

신 의원은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가 지난해 8월 19일 ‘홍범도의 귀환 왜 78년이나 걸렸나’라는 기사에서 이 부고장 내용을 보도하면서 홍범도 장군의 ‘충직한 공산당원’ 면모를 회고한 위 내용은 쏙 빼버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 매체는 “일찍부터 착취에 대척하여 분투하였으며 조선 독립운동의 거두가 되어 고군분투하였다. 홍범도 동무에 대한 기억은 그를 아는 친우들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는 내용만 소개하고 공산주의 경력과 관련한 내용은 의도적으로 빼어버렸다는 것이다. 신 의원은 그 이유에 대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반대하고 집요하게 정치공세를 펴는 세력들이 ‘볼셰비키 홍범도’ 정체를 국민들에게 숨기고 싶어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 의원은 “두 문건에 의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참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진실이 보다 선명하게 밝혀졌다”며 “1927년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행은 결코 독립투쟁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으며 스스로가 공산주의 이념에 경도돼 있었던 것”이라며 “그는 ‘무늬만 공산당원’이 아닌, ‘충직하고 뼈속까지 빨간 공산당원’이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니 레닌과 스탈린 세력에 잘 보이기 위해 고려인 군중들에게 ‘가짜 공산당원’에 대한 적개심을 선동하기까지 한 것이 아니겠는가”고 반문했다. 신 의원은 “이제 더 이상 야권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지 말고,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독립투사 홍범도’도 맞지만 ‘공산당원 홍범도’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레닌이 하사한 권총을 차고 소련군 복장을 한 홍범도 장군. 이 소련군 복장을 토대로 카자흐스탄과 국내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이 제작됐다. 홍 장군은 ‘자유시 참변’ 후인 1922년 2월 초 한인 무장세력(고려혁명군) 대표 자격으로 레닌, 트로츠키와 면담했다. 레닌은 홍범도에게 혁명정권에 협조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금화 100루블, 군복 한벌, 홍범도 이름을 새긴 권총을 선물로 주었다.(장세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역사공간). 국가보훈부 제공

학계에서는 일반에 가장 잘 알려진 홍범도 장군 사진이 레닌이 하사한 권총을 차고 소련군 복장을 하고 있으며 , 말년을 보낸 카자흐스탄에서 제작한 홍 장군 흉상도 소련군 복장을 참고로 제작했고, 국내 국방부·육사 흉상 역시 소련군 복장을 참고해서 제작한 것은 홍 장군이 절대 ‘무늬만 공산당원’은 아니었다는 증거로 삼고 있다.

신 의원은 “민주당 등 야권은 온갖 억지와 궤변으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마치 독립운동 전체에 대한 폄훼인 양 호도하고 있고, 나아가 ‘죽창가 정치선동’에 혈안이 돼 있다”며 “‘반공’의 정체성 속에 태동하고 성장·발전해온 대한민국 육사와 국군이 ‘공산당원 홍범도’를 기리고 추앙케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만약 같이 모셔진 초대 국방부장관 철기 이범석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아신다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라며 “‘공산당원 홍범도’는 대한민국 육사·국군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하지만 ‘독립투사 홍범도’를 부정할 순 없다. 따라서 그 흉상은 ‘육사’가 아닌 항일투쟁과 연관된 장소로 이전하는 것이 최선이며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과 국군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요, 예의”라고 밝혔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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