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너지공대,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설립한 것”
“나주를 다시 호남의 중심으로…관광·첨단과학도시 만들 것”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남 나주는 전주와 함께 조선시대까지 호남 최대 도시이자 행정 중심지였다. 그러나 산업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면서 '무기력한 도시'라는 자탄이 적지 않았다. 지리적으로도 나주는 광역시청과 도청이 있는 광주와 무안 사이에 끼여 오랫동안 '저개발·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광주에 호남 제1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내주고 변방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이를 딛고 지금, 그 옛날의 영화(榮華)를 되찾으려는 나주의 도전이 역동적이다. 그 중심에 윤병태 나주시장이 있다. 나주를 관광도시이자 미래 첨단과학도시로 꾸려 다시 '호남의 중심'으로 세우는 것이 윤 시장의 포부다. "전통사회에서 나주는 농업 곡창지대였지만, 미래사회에서의 나주는 에너지 곡창지대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저의 경험과 능력을 나주의 재도약을 위해 바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밝힌 출마의 변에서도 미래도시 나주의 방향성이 읽힌다.
윤 시장은 기획재정부 예산실 출신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예산통이다. 1992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후 주로 기재부에서 근무했다. 이런 이력 탓에 지역을 살찌울 국비 확보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 또한 크다. 그러나 뜻밖에도 윤 시장은 이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예산을 따내는 것은 인맥이 아니라 사업 타당성을 갖고 발품 파는 일"이라는 게 그의 예산론이다. 전남도 정무부지사 시절 한국에너지공과대학(켄텍)을 유치했고, 에너지융복합단지, 강소연구개발특구, 직류송전산업, 에너지규제자유특구, 이차전지 산업 등 숱한 나주시 국고사업을 지원했다. 발품을 팔아 정부와 국회를 설득한 결과란다.
"모든 정책의 종착역은 일자리 창출이다"
윤 시장을 나주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것은 전북 전주에서 열린 전국혁신도시 단체장회의 다음 날이었다. 점심시간 직후 대면한 그의 얼굴에서는 누적된 피로가 가득 느껴졌다. 하지만 수도권 공공기관들의 추가 이전, 이른바 '혁신도시 시즌2'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찬 모습으로 특유의 정리된 논지와 사례를 쏟아냈다. 공직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고언이다.
"혁신도시 시즌2는 그 방향에 있어서 혁신도시 중심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존 혁신도시가 현재 미완성 상태로 남아있어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로드맵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저희도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인데, 정권 초기에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대형 사업들은 정권에 힘이 있을 때 논의가 이뤄져야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중앙정부가 혁신도시의 활성화를 위한 역할을 담당해 줘야 한다. 세종시의 경우에는 행복도시건설청이 있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정주 여건 개선 등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주고 있다. 반면 전국 10곳의 혁신도시는 중앙정부의 지원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다. 전국 혁신도시 시장군수협의회를 통해 가칭 '혁신도시 지원청' 설치에 대한 의견을 모아 중앙정부에 적극 건의할 계획이다."
윤 시장이 지향하는 나주는 뭘까. 그의 직답이다. "모든 정책의 종착역은 '일자리 창출'이다. 현세대는 물론 미래세대가 진로를 안정적으로 설계하고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희망의 터전 나주를 조성하겠다. 이를 위해 큰 틀에서 2025년 500만 관광시대 도약과 돌아오는 농촌, 활력 넘치는 농업, 16개 공공기관 및 한국에너지공대 주축의 미래 첨단과학도시 조성 등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궁극적으로 주민들 삶의 질이 최고인 도시로, 청년이 돌아오고 국가 미래 첨단산업 허브로 도약하는 20만 강소도시 나주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나주는 '천년고도' 역사와 '혁신도시' 활력이 공존하는 두 얼굴의 도시다. 개발에 손 타지 않고 남은 '목사골' 모습은 오히려 큰 밑천이 됐다. 나주 시내에서 10여km 거리에 있는 '반남 고분군'은 시간을 2000여 년 전 마한시대로 이끈다. 일제강점기 수탈 기지 역할을 했던 영산포 항구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고려시대 선박을 복원한 '황포돛배'가 유람선으로 뜨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과 '버들낭자'의 러브스토리를 남긴 '완사천'이 나주시청 앞 300m 지점에 있다. 여기에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통해 '혁신도시'라는 기대하지 못한 유인이 더해졌다. 배밭뿐이던 나주 금천·산포면 들녘 한복판에 자리 잡은 빛가람 광주·전남혁신도시는 전국 10개 혁신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2개 광역자치단체가 공동으로 조성한 곳이다. 부지 7334㎡에 한국전력을 비롯해 16개 공기업·기관이 둥지를 틀었다. 이들 기업·기관 직원만 해도 7000여 명이다. 한전은 한 해 예산이 나주시의 120여 배에 달하는 60조원이나 된다.
"나주 큰 그림은 '대한민국 에너지수도' 조성"
"나주혁신도시가 그려가는 큰 그림은 '대한민국 에너지수도' 조성이다. 혁신도시와 인근 지역은 '국가 에너지밸리'로 꾸며진다. 한전이 그 주역을 맡는다. 구글·애플 등 세계적 기업들이 입주해 미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처럼 에너지밸리는 세계적인 에너지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2015년부터 한전을 비롯한 전력 공기업들은 2021년 5월 기준 에너지 관련 기업 530개사를 유치했다. 투자협약 금액은 총 2조5749억원에 달한다. 협약을 맺을 때 약속한 고용 인원은 모두 1만1714명이다. 이제는 양적 성장을 마치고 2025년까지 질적 성장을 통해 '글로벌 스마트에너지 허브'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거대한 투자전략은 오랫동안 '저개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주의 위상을 바꿔놓을 발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가적으로는 '나주 에너지밸리'를 통해 튼실한 '미래 먹거리' 하나를 더 챙기게 됐다."
그가 설계하는 대한민국 에너지수도 밑그림은 2025년 나주 에너지 국가산단 착공을 통해 어느 정도 완성될 예정이다. 그가 주목하는 또 다른 분야는 세계적인 산업 이슈이자 국가경제의 안보 핵심기술 분야로 평가받는 '전력반도체' 산업 육성이다. 윤 시장은 "에너지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해 차세대 고효율 반도체 생태계, 초강력레이저·인공태양공학 연구시설 유치, 켄텍 연계 산학클러스터, 기회발전특구 지정 등을 본격 추진하겠다"며 "에너지 통합 플랫폼 도시를 통해 20만 글로벌 강소도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나주시가 이 같은 대형 플랜을 구상하고 추진해올 수 있는 토대는 바로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을 비롯해 한전KPS, 한전KDN, 전력거래소 등 전력공기업과 에너지 관련 업체들, 그리고 에너지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한국에너지공대가 자리하고 있어 가능했다. 그래서인지 윤 시장은 최근 정부의 켄텍 출연금 축소 움직임에 대해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한전의 적자 구조는 근본적으로 에너지 수입가격은 상승하는 데 비해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그동안 판매가격 인상을 억제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전 적자 규모가 31조원에 이르는 데 반해 올해 한전의 한국에너지공대 출연금 규모는 1588억원 수준이다. 대학 설립에 불가피한 예산 지원을 한전 적자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켄텍은 2025년까지 학생, 교원, 시설 등 편제를 완성할 계획으로 시설 확충을 위한 투자가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국가적 필요와 결단, 법에 의해 설립된 대학을 국가에서 책임지고 운영해야 한다. 한국에너지공대는 단순히 호남이 잘살려고 만든 대학이 아니다. 에너지 분야에 취약한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와 에너지 대전환 시대에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설립된 인재 양성 대학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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