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 된 “말씀하십시오”···尹 “싸워라” 주문 후 달라진 국무위원들
“지방자치법을 보시면 지자체에 대해서 감사를 하거나 시정명령하거나 법적 조치를 하려면 법 위반 사항을 먼저 검토를 해야 되는 거지요? 법적 근거가 있습니까?”
“말씀을 하십시오.”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같이 답했다. 앞서 국가보훈부는 지난달 27일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저지를 위해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이에 민 의원이 지자체 고유 사무에 중앙부처가 법률 조치를 할 수 있는지 근거를 물은 것이다.
최근 국회에 출석한 국무위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전매특허인 “말씀하십시오”라는 답변이 국무위원들 사이에서 늘어난 것이 상징적이다. 이는 의원들의 질문에 즉답하지 않고 “말씀하십시오” “질문하십시오”라고 말하며 진짜 묻고 싶은 것을 물으라는 듯한 태도로 일관되게 나타난다. 지난해 8월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전체회의에서 질의를 받는 법무부 장관께서 예컨대 ‘너무나도 심플(단순)해서 질문 같지가 않다’라고 하는 약간 모욕적인 언사라든가 혹은 질의에 대해 답변하지 않고 ‘말씀하십시오, 말씀하십시오’라고 듣기에 따라서는 조소에 가까운 그런 답변 등 불성실하게 답변하는 태도를 많이 보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 장관은 지난달 30일 민 의원이 “‘세금도둑잡아라’라는 시민단체 아시나”라고 묻자 “주로 민주당과 발맞춰서 일하는 단체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금도둑잡아라는 검찰 특수활동비와 법무부 장관 출장비 공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단체다. 민 의원이 “그렇게 정치적인 언어를 쓰지 마시라니까 또 그렇게 말씀을 한다”고 지적하자 한 장관은 “팩트를 말하는 것이다. 위원님은 질문하시고 제가 답을 드리면 될 것 같다”고 반박했다. 지난 1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김의겸 민주당 의원과 출장비 내역 공개를 두고 설전을 벌이다 “저거(법무부 예규) 됐고요. 그러면 저 공개할게요”라며 “공개는 바로 하는데 그 대신에 지난 정부에 있던 법무부에 있었던 다른 정보도 있지 않나. 같이 공개를 하겠다”고 말했다.
국무위원들의 직설적인 표현도 많이 늘어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위성곤 민주당 의원이 “지금 우리 정부는 도쿄전력의 입이 되어 버렸다”고 하자 “그건 굉장히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위 의원이 “(저의) 말을 듣고 답을 하십시오”라고 하자 한 총리는 말을 끊고 “아니 그런데 어떻게 정부가 얘기를 하는데 일본 도쿄전력의 입이라고 얘기를 하나. 그건 정말 기본적인 예의가 없으신 것”이라고 발끈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예결위에서 중앙일보 편집인 시절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는지와 이의 적절성 여부를 질문받자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며 “팩트 자체가 틀렸는데 왜 그것을 갖다가 자꾸만 비틀어서 질문하나”라고 반박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강상면 노선(수정안)을 제안한 동해종합기술공사에 관한 민주당 측 질의에 “전관들에게 특혜를 주려 계약을 일부러 엉터리로 했다면 장관인 저부터 감방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무위원들의 달라진 답변 태도 원인이 윤 대통령의 주문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힘 연찬회에 다녀온 소회를 밝히며 “현재 여야의 스펙트럼이 너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점잖게 이야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며 “공격을 받아야 힘이 되고, 결집이 되는 측면도 있으니 그런 게 무서워서 피하지 말라. 국무위원은 모두 정무직 정치인이고 국무위원들은 논리와 말을 가지고 싸우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권이 대국민선전포고를 한 이후에 국무총리를 비롯한 이 장관들,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게 됐다”며 “매우 공격적이고 도발적이고 뻔뻔스러운 행태들이 일종의 지침과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정도”라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과 국무위원들의 날 선 공방은 지난 1일 정기국회의 개회로 한동안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대정부질문이 오는 5일부터 예정돼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출석 요구를 받은 국무총리,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은 출석해 답변해야 한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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