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 감독 의도는 왜 전달되지 못했나"
반성 기능 마비되면 누구나 악해질 수 있어
아파트 안과 밖의 구별짓기, 시대상 반영
감독의 비판적 의도, 대중에게 닿지 못해
각박한 한국 현실, '공존' 메시지 못 받아들여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 채선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문화평론가와 정치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나오셨어요. 안녕하세요.
◆ 손희정, 김만권> 안녕하세요.
◇ 채선아>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얘기 좀 해보려고 하는데요. 지금 <오펜하이머>랑 같이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있는 영화거든요. 이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본론 들어가기 전에 소감을 한마디씩 나눠주셨으면 좋겠어요.
◆ 손희정> 올여름 텐트폴 영화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보긴 했어요. <밀수>, <비공식작전>, <더문> 그리고 <콘크리트 유토피아>. 그중에 원픽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영화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이 좀 복잡해져서 오늘 그 이야기 함께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김만권> 저도 상당히 머리가 좀 복잡했었는데요. 특히 이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노래 <즐거운 나의 집>이 나오잖아요. 근데 끝날 때는 <아파트>라는 노래로 끝나는데 가사가 '쓸쓸한 너의 아파트'잖아요. 즐거운 나의 집이 쓸쓸한 너의 아파트로 끝나는 이 영화가 상당히 생각을 좀 많이 하게 만들었던 것 같고요. 그러니까 즐거운 나의 집을 '으쌰으쌰'해서 만들었는데 아무도 없는, 뭔가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어 있다라고 하는 어떤 그런 현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착잡했던 영화였습니다.
◇ 채선아> 후기들 보니까 '두 번은 못 보겠다' 혹은 '보고 나니 기분이 찝찝하다'라는 얘기들도 있던데 어떤 얘기인지 영화 안 보신 분들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요. 간단하게 인물 소개와 요약을 해주실까요?
◆ 손희정> 이 영화의 배경은 기후위기로 이상 한파가 몰아닥친 근미래의 서울입니다.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요. 서울이 폐허가 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오래된 아파트 단지인 황궁 아파트 딱 한 동이 무사히 살아남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추위 속에서 황궁 아파트로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요.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하는 외부인들이 몰려옵니다. 아파트 주민들끼리 외부인을 받을 것인지 받지 않을 것인지 의견이 좀 갈리게 되고요. 결국은 민주적인 투표 방식을 통해서 외부인을 내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내부 갈등도 있고 외부 갈등도 있고, 이런 와중에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평범한 중년 남성인 김영탁(이병헌)이 동대표로 선출이 되고요. 굉장히 위협적이랄까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 채선아> 지금 간단하게 말씀을 해 주셨는데 정말 이 영화 보면서 나라면 저런 상황에 어땠을까,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다들 해보고 우리 사회에 대입해 보기도 하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파국과 비극이 외계인이 침범한 것도 아니고요. 정말 평범한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그런 이웃 주민들이 벌이는 그런 비극과 파국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언급되는 게 '악의 평범성'이에요.
◆ 김만권>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죠. 악이라는 게 우리가 상상할 때는 괴물들이나 저지르고 이런 일 같잖아요. 근데 실제로 보면 너무나 일상적이고,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실제로 들여다보면 너무나 가정적이고 그런 가장들이라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왜 그런 악을 저지르게 되느냐 라고 했을 때 제일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냥 반성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거든요. 한나 아렌트가 '사유해야 된다'고 하는데 한나 아렌트의 사유란 어떤 뜻이냐면 내가 나 자신과 대화를 한다는 뜻이에요. 아주 쉽게 말하면 여러분이 매일 일기를 쓰시잖아요. 그 일기 쓰는 것과 똑같은 과정인 거예요. 그럼 일기를 왜 쓰게 했느냐,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기능이라 그렇거든요. 그 기능 자체가 멈춘다는 거예요.
◇ 채선아> 내가 뭔 일을 했는지 반성하지 않는 거예요.
◆ 김만권> 그리고 그 반성하지 않을 만한 이유들이 언제 오느냐, 항상 위기 상황이 온다는 거예요. 위기 상황이라는 건 늘 반성하지 않을 이유를 주고 지금은 위기니까 내가 이런 걸 돌아보고 이럴 여유가 없어 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알고 보면 위기 상황이야말로 우리가 뭘 하고 있는가를 가장 많이 돌아봐야 되는 시기거든요. 내가 평소에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내가 뭘 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되는데 그 위기 상황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지금 이 위기이기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어, 그런 걸 하는 건 오히려 사치야.' 이런 식으로. 반성 기능 자체가 중단이 되면서 소위 말해 그게 어디까지 가느냐, 이 세계를 (황궁 아파트를) 당신과는 공유하지 않겠다는 발상까지 간다는 거예요.
◇ 채선아> 그러면 영화에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대입해보면 어떤 지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 김만권> 황궁 아파트라는 곳이 유일하게 사람들이 같이 생존할 수 있는 곳인데 이곳에 출입을 막게 되는 이제 일들이 일어나잖아요.
◆ 손희정> 외부인을 받아들였으면 오히려 공존의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었는데 내치기로 결정하면서 외부 사람과 내부 사람 사이에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게 되고요. 내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불신이 싹트게 되거든요. 김만권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그 위기라고 하는 게, 나를 돌아볼 바로 그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라는 말, 영어로 crisis잖아요. 이 어원에 어떤 의미가 들어가 있냐면 분기점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이 분기점에서 내가 A를 선택하면 병이 나을 수도 있고 B를 선택하면 죽을 수 있다고 하는 어떤 의학적 선택의 기로가 어원인데, 만약에 외부 사람들과 공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어쩌면 다른 세계가 열릴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걸 내쫓기로 하는 거죠. 근데 이 이야기가 황궁 아파트 안에서도 계속 의견이 분분해요.
◇ 채선아> 맞아요. 내쫓는 걸 반대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 손희정> 쫓아내야 된다고 하는 이병헌 파와 받아들여야 된다고 하는 박보영 파가 나눠져 있어요. 근데 권력을 이병헌 파가 잡았기 때문에 박보영 파는 암약하는 거죠. 몰래 외부 사람들을 숨겨주고 하는 이런 이야기들이 펼쳐지게 됩니다.
◇ 채선아> 그 인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내가 저 상황에 처하면 나는 이병헌처럼 할 거야' 혹은 '나는 박보영처럼 할 거야' 이런 얘기가 오간단 말이에요. 그런데 영화에서 이병헌의 배역이 악역이에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생존해야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않아?'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단 말이에요. 이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손희정> 박찬욱 감독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이병헌 배우한테 "이렇게까지 잘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얘기했대요. 연기를 너무너무 잘해요. 그래서 감정 이입하게 되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면서 딱 떠올랐었던 게 뭐냐 하면, 올해 6월쯤에 떴던 아파트 광고가 있어요. 반포동에 새로 짓는 아파트였는데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홍보 문구를 썼잖아요. 굉장히 우리 시대 정신을 보여주는 홍보 문구였다고 생각하거든요.
황궁 아파트에서 외부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사람 중에 첫 번째로 목소리를 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냐면, 황궁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빌라촌에 살던 사람이에요. 내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는데 못 들여보내준다고 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건너편에 살던 드림팰리스라는 비싼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그동안 우리 무시했었는데 여기 들어오려고 하니까 싫다는 거예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의 조건 안에서 감독은 명백하게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자고 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 같아요. 근데 보는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내가 지금 사는 게 너무 각박하니까. 그런 생각이 좀 들더라고요.
◆ 김만권> 영화에 대해서 나오는 반응을 보면서 많이 느꼈던 게 진짜 각자도생의 시스템이 우리한테 도달했다는 거였어요. 정치적으로 이야기하면 각자도생이 널리 퍼진다는 건 정치가 없다는 뜻이거든요. 우리를 보호하는 기능으로서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도 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들었고요. 위기라는 것들이 너무 일상화된 거죠. 위기가 일상화되다 보니까 정말 말도 안 되는 저렇게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건물이 한 채 남아 있는 저 기이한 상황에 우리가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세계가 된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진짜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었고요. 그리고 이 각자도생의 시스템에서 조금만 양심 있는 사람들이 남아있어도 이 시스템이 버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얘네들을 어떻게 해서든 내쳐야 되는 거예요. 바깥으로 내보내고 빨간 줄을 그어버리고 쫓아내야 되는 이 일들이 나타나요.
◇ 채선아> 그러니까요. 박보영 배우가 영화에서 굉장히 인류애가 넘치는 캐릭터인데 댓글에서 보면 민폐 캐릭터라고 하더라고요.
◆ 손희정> 박보영 배우 배역이 소명감을 가지고 있는 좋은 간호사이기도 하니까 사람을 못 내치는 거죠. 한편으로는 이 영화의 젠더 재현에 대해서 고민을 좀 하게 되는데 '박보영 배역이 민폐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박보영은 남자들이 구해다 주는 음식을 집에서 안전하게 받아먹으면서 옳은 말만 한다. 그래서 굉장히 자기만 윤리적인 척하는 나쁜 사람이다. 나쁜 여자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관객들이 있더라고요. 근데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파국 서사,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잖아요. 세상이 망한 후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의 트렌드에 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어요.
워킹데드 같은 좀비 아포칼립스물을 보면 시즌1에서는 여자들이 다 못 싸워요. 왜냐하면 그렇게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자기 몸을 훈련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못 싸우는 거죠. 근데 시즌이 거듭될수록 자기 몸을 훈련하고 왕성하게 싸우는 이런 재현들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더 이상 집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 여성이 있는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너무 성별 이분법적으로 밖과 안을 그린 거죠. 근데 그 재현 자체가 한국의 아파트라고 하는 주거 형태에 대한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아파트는 이성의 부부가 사는 핵가족을 위한 주거 공간을 만든 거였거든요. 그래서 남편은 밖에 나가서 돈 벌고 아내는 집에서 행복한 우리 집을 꾸리는 주부로서 산다. 이게 80년대 90년대에 만들어졌었던 이데올로기였다고 할 때 이 영화가 그걸 비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화에서 이병헌 배역이 굉장히 실패한 가장인데, 막 다른 남자들한테도 '넌 가장이니까 이렇게 폭력을 저질러도 돼. 우리 집을 지켜야 돼'라고 얘기하거든요. 감독은 굉장히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한국 사회에선 비판적으로 안 받아들여지고 있는 거죠.
◆ 김만권> 오히려 (이병헌 배역의 서사가) 정당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죠. '너는 가장이기 때문에 지금 네가 뭘 하든 자랑스러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네가 죄책감을 느낄 것도 없어. 네가 하는 건 그냥 당연한 일이야. 가족들을 위해서 하는 거야' 라는 게 일종의 만병통치약 같은 처방인 거죠.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내가 우리 가족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다 정당화될 수 있어요. 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우리가 만들어왔던 남성, 가장 중심적인 사회인 거죠.
◇ 채선아> 또 지금까지 말씀해 주신 것 외에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어떤 질문이 더 있는 것 같다 하시는 게 있을까요?
◆ 손희정>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면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가 황궁 아파트 주민일 거라고 생각해요. 밖에서 온 사람을 내쳐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러다가도 굉장히 당연하게 자기가 황궁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남의 건물에 들어가 침탈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런 사고방식에 공감한다는 것에 대해 저를 포함해서 우리가 좀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김만권> 이병헌의 캐릭터 이름이 두 개잖아요. 하나는 김영탁이고 하나는 모세범이라는 이름인데 이 모세범은 구원자 모세의 이름에서 나온 거예요. 그래서 보면 그 영화 상징에서 구원자로서 하는 걸 다 해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등 다 그런 것들을 재현한 거거든요. 빨간 줄 긋고, 바둑의 흰돌도 되게 종교적인 거고요. 흰돌이 종교에서 구원 같은 걸 상징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세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오히려 영탁이라는 이름에 훨씬 더 주목이 되더라고요.
영탁이라는 말 자체가 뭐냐하면 오랫동안 생계를 남에게 의지한다는 뜻이에요. 또 한편으로는 속이 비어 있는 물건이라 안에 단단한 물건을 넣으면 그 물건이 흔들리면서 소리가 난다는 거거든요. 비어 있지만 어느 정도 동기부여를 하면 뭔가 소리를 낼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는 거. 이게 그냥 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영탁이 평범하게 되기 위해서 구원자의 역할까지 해야 된다는 게 좀 문제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채선아> 네, 여기까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 손희정, 김만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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