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입원제, 정신질환자를 ‘쉽게 가두는’ 제도가 아니다
정부가 최근 잇따르는 무차별 범죄를 계기로 판사가 정신장애인 강제입원(비자의 입원)을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사실상 인신 구속에 해당하는 새 강제입원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침해되는 환자 인권에 대한 고려와 사법부 인력 부족 등에 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비정상적인 범죄 가능성이 큰 분들에 대한 관리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사법입원제를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함께 범죄 예방 대책으로 꼽았다. “‘묻지마식 흉악범죄’ 등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 중”이라는 게 법무부 공식 의견이다.
현재 국내 강제입원 제도는 크게 3가지다.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이 신청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소견을 받아 하는 보호입원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하는 행정입원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로 사흘 이내로 하는 응급입원 등이다. 정부가 검토하는 사법입원제는 판사가 자해나 가해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치료 목적으로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정신장애인=잠재적 범죄자’라는 관점에서 강제입원 제도를 추가하려는 정부 접근 방식을 우려한다. 환자의 인권 보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사법입원제를 도입한 미국, 독일 등 선진국 사례와는 결이 크게 다르다는 지적이다. 박종익 강원대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국외에서 사법입원제가 도입된 것은 함부로 환자를 구금할 수 없도록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인데, 국내에선 현재보다 비자의 입원을 쉽게 하는 제도인 것처럼 논의된다”며 “제도가 제대로 도입돼 운용되면 정신과 전문의가 판단하는 것보다 입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제철웅 한양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도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가두려는 식의 현재 논의는 매우 위험하다”고 짚었다.
제 교수는 “국외 사법입원제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오히려 현재 한국에서 강제입원 요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장기간 입원하는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입원 절차를 계속 늘리기에 앞서 장기 강제입원 환자가 넘쳐나는 국내 현실부터 톺아보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3월 발표한 ‘정신장애인 인권 친화적 치료환경 구축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나라별 정신장애인 평균 입원 기간을 보면, 미국 6.4일, 영국 35.2일, 호주 89일 등이다. 한국은 평균 200.4일로, 압도적으로 길다.
선진국에선 사법입원 판단 과정에서 판사가 서류 검토에 그치지 않고 입원 대상 환자를 직접 만나 심사하는 것도 제도 도입 과정에서 필수적인 고려 요소다. 미국 대부분 주에선 판사가 강제입원 요건 충족 여부를 심사하고 환자를 직접 심문한 뒤 영장을 발부해야 치료시설에 이송하거나 입원시킨다. 독일에서도 판사가 강제입원과 강제치료 등 환자의 신체의 자유 제한에 앞서 환자의 항변을 직접 듣는 절차를 거친다. 독일은 이 과정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의사 반영을 돕는 ‘절차보좌인’으로 변호사, 사회복지사, 정신장애 전문가 등을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비용을 기본적으로 국가가 부담한다.
현재 국내 강제입원 환자에 대해 입원 한 달 이내에 적합성을 심사하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통상 서면조사만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동진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결정을 내릴 판사가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말을 직접 듣도록 하는 게 사법입원제를 통한 적법 절차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기엔 국내 법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법관은 모두 3000명 수준인데, 강제입원 뒤 이뤄지는 입원적합성심사 건수는 2021년 3만271건, 2022년 2만9195건이다. 전부 달려들어도 판사 1명이 연간 10건씩은 맡아야 하는 셈이다. 지난 2021년 대법원 발표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의 법관 1명당 사건 수는 이미 독일의 약 5.17배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들은 국내에 강제입원 여부를 판단할만한 전문성을 갖춘 판사가 부족하다는 점을 사법입원제 도입에 반대하는 핵심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제철웅 교수는 “미국과 독일에선 통상 비자의 입원을 담당하는 법관이 같은 업무를 수십 년 맡아 전문성을 갖춘다. 국내엔 정신질환에 전문성 있는 인력이 (사법부에) 사실상 없다. 사법입원 제도를 도입하려면 판사 수 자체도 세 배는 늘려야 한다”며 “선진국형 사법입원제를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토양이 없는 셈”이라고 짚었다. 장석용 연세대 보건대학원 조교수도 “판사 수를 늘리는 등 막대한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런 행정력이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정신장애인들이 일방적으로 시설에 수용돼 갇혀 지내는 틀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인프라 확충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미국 등에선 시설 수용의 인권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1970년대부터 탈수용화 운동이 벌어졌다. 현재 국내엔 정신질환으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자해나 가해 등 위험한 상태로 가지 않도록 당사자한테 휴식과 회복을 지원하는 위기지원 쉼터가 전국에 3곳뿐이다.
박종익 교수는 “비자의 입원을 최소화하면서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려면 국가가 이들을 책임지고 지역사회에서 잘 치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판사 수와 정신질환 치료 인프라가 부족한 국내 현실을 고려하면, 사법입원제 본래 취지대로 당장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이런 준비 없이 사법입원제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공허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토대부터 준비하자는 제안이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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