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생존자들의 '말'로 끔찍한 참사를 재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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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한 사회적 참사를 소재로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 타인의 불행을 여흥거리로 소비하거나 희생자를 그릇되게 묘사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영국 국립극장의 <그렌펠: 생존자들의 말을 빌려> 는 그럴 수 있음을, 나아가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렌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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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기억 속에 여전히 생생한 사회적 참사를 소재로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 타인의 불행을 여흥거리로 소비하거나 희생자를 그릇되게 묘사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영국 국립극장의 <그렌펠: 생존자들의 말을 빌려>는 그럴 수 있음을, 나아가 그래야 한다는 당위를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렌펠>은 2017년, 런던의 한 고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발생해 72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참사가 일어난 후 국립극장장은 작가 질리안 슬로보를 만났다. 그 만남에서 두 사람은 이 사회적 재난을 다루기에 국립극장 무대보다 적당한 곳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립극장은 그 자체로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그렌펠을 주제로 한 극본 집필이 시작되었다. 슬로보는 이후 5년간 생존자, 유가족, 지역 주민 등과 만나 심층 인터뷰를 가졌고, 전문가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내기 위해 버베이팀 플레이(Verbatim Play)라는 극 형식을 택했다.
많은 이들에게 아직 생소한 이 장르는 실존 인물들의 말을 토대로 대사를 만드는 극이다. <그렌펠>의 주인공은 실제 생존자 아홉 명으로, 극은 주로 그들의 ‘말’을 통해 전개된다. 물론 이 아홉 명은 제작 과정에 밀접하게 참여했고, 모두 자신의 말을 편집, 인용하도록 동의했다. 그렇게 극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빌려 진정성과 깊이, 그리고 디테일을 갖추게 되었다.
슬로보는 극이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표현되거나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 또한 경계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뜨거운 피와 살이라면 단단하게 이를 지탱하는 골격은 진상조사 청문회에 기록된 증언이다. 배우들은 1인 다역으로 생존자와 청문회에 출석한 핵심 인물들을 연기했고, 그렇게 생존자들의 말은 진상조사 청문회에서의 증언과 빠르게 교차되어 관객에게 보였다.
이 같은 방식으로 왜, 어떻게 참사가 발생했는지를 밝히는 큰 흐름이 드러나고, 관객은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참사 책임자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생존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다 직접적으로 보게 된다.
이는 극의 시작부터 선명히 드러난다. “2011년 4월 4일. 화재 6년, 2개월, 10일 전”이라는 문구와 함께 전(前)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의 실제 인터뷰가 대형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아직도 영국 수상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영상에서 캐머런 수상은 산업 성장을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불필요한 규제들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정책이 훗날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이미 알고 있는 객석에서는 낮은 신음 소리가 흘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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