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전사 윤석열’은 어떻게 탄생했나 [아침햇발]

강희철 2023. 9. 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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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윤 정부 ‘역사 쿠데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강희철 ㅣ 논설위원

2017년 중반의 어느 날, ‘윤석열 검사장’이 개인 톡방에 사진 몇장을 보내왔다. 첫 줄에 “‘처치위원회’ 활동 배경”이라고 적힌, 어떤 책의 일부를 손수 찍은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캠프 데이비드’에서 활짝 웃고 있는 윤 대통령을 보며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다.

“나중에, 기획할 때 참고하라고 보내요. 국가기관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했는지, 우리도 (국정원) 댓글 사건 하고 있으니까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기사를 준비해 보시면 좋겠다 싶어서.”

미국 상원의 처치위원회(Church Commitee)는 ‘워터게이트 사건’(1972년)으로 닉슨이 하야한 뒤 만들어졌다. 국가기관의 불법 정치 관여, ‘반공’을 명분 삼은 연방수사국의 ‘코인텔프로’ 공작 등 권력 남용의 실체를 파헤쳤다. 윤 검사장 덕분에 처음 알았다.

그래서, ‘우회전’ 가속페달을 거침없이 밟고 있는 윤 대통령이 몹시 낯설다. 그는 반세기 전 처치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됐던 일을 새삼 리바이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맹종 세력,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다.” 대체로 경악하는 사람이 많다. “날마다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70~80년대 공안부 선배들 말씀을 다시 듣는 것 같다.” ‘공안’이 전공인, 윤 대통령의 검찰 선배가 한 말이다.

원래 ‘꼴보수’였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윤 검사’의 동료, 선후배의 기억은 다르다. “보수 성향은 맞지만, 꼴보수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같은 편인) 박근혜 대통령 초기에 굳이 ‘역린’(댓글 사건)을 건드려 불이익을 자초했겠나, 대충 덮고 말지.”(전직 검찰총장) 처치위원회 같은 것에 관심을 두었을 것 같지도 않다.

집권 초기에도 지금과는 달랐다. “(둘이 만났을 때) 윤 당선인이 그러더라. ‘야당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해볼 거다’라고. 거짓말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난화분 들고 당선 축하 사절로 갔던 이철희 전 정무수석의 회고다. 국민의힘의 한 ‘친윤’ 중진은 “취임 초부터 ‘높은 벽’ 같은 걸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야권이 자신을 전 정권의 배신자 취급하며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하는 거 아닌가….”

윤 대통령은 ‘스토리’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말할 때 보면 음모론 비슷한, 소설 같은 얘기를 즐겨 했다”(특수검사 출신 변호사)고 한다. 정권을 잃은 좌익이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며 잘 짜여진 ‘각본’하에 자신을 반대한다고 상상한다. 이런 ‘의식화’의 교재로, 검찰총장 때부터 애청해온 유튜브를 지목하는 사람이 그의 지인 중에 꽤 있다. 발언 수위는 한·미·일 정상회의 전후로 급격히 높아졌다. “정치를 몰라도 대통령이 됐잖냐는 자신감이 있는데다, 캠프 데이비드에서 기대 이상의 외교 성과를 올렸다는 생각에 부쩍 고무된 것 같다.”(전 청와대 수석)

윤 대통령은 집요하고 단호한 성정을 지녔다. 방향을 정하면, ‘위험과 보상 사이의 균형’은 신경 쓰지 않는다. 검사 때는 물론, 서울중앙지검장이 돼서도 기각당한 영장을 두번, 세번 재청구했다. 법원에 대들면 손해가 막심한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준석을 내친 것도 그렇고, 죽마고우의 부친이자 ‘온건보수’의 아이콘인 이종찬을 등지면서 홍범도 흉상 철거를 밀어붙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정무적으로 너무 거칠다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잘못된 것을 놔둘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지지율, 총선은 후순위라는 말이다. 부재하다고 늘 비판받던 국정 철학이 비로소 선포됐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행보는, 총포 시대에 기사 갑옷을 입고 허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와 흡사하다. 검찰총장 때는 말리는 사람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통령을 무서워하는 참모들만 넘쳐난다. 힘없는 촌로 돈키호테와 달리 대통령이 이념전사로 나서면 나라가 두쪽 난다.

캠프 데이비드는 1959년, 미-소 정상회담이 열린 역사적 장소다. 살벌한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 수괴’ 흐루쇼프를 초청한 아이젠하워는 숙식을 같이하며 평화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정치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임을 상징하는 그곳에 가고도 윤 대통령은 교훈을 얻지 못했다. 옛말에도 ‘아는 만큼 본다’(Tantum videmus quantum scimus)고 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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