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2’에 집착하나”…또 다른 물가 논쟁이 시작된 이유 [뉴스 쉽게보기]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2023. 9. 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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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이 오이를 구매하는 모습. [사진 = 연합뉴스]
경제 기사를 읽다 보면 물가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죠. 매달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발표되면 ‘물가 상승률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는 식의 보도가 나오고는 하잖아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물가 상승률은 중앙은행이 항상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대상이에요.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세가 과도하면 국민의 부담이 가중되니 이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하죠. ‘적당한 물가 상승률은 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최근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어요.

기준금리, 대체 어디까지 올릴 셈이야?
중앙은행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관리해요. 경제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수단이 기준금리죠. 기준금리 조정은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거예요. 보통 물가 안정이 시급하다고 생각되면 금리를 올리고, 경기가 너무 침체했다 싶으면 금리를 내려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년 넘게 기준금리를 올려 왔어요. 치솟던 물가를 잡기 위한 선택이었죠. 연준은 6주에 한 번씩, 1년에 8차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개최하는데요. 지난해 3월 이후 열린 12번의 회의 중 11번의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했어요.

그 결과 미국 기준금리는 5.5%까지 올랐어요.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인상하다 보니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 됐죠. 요즘엔 기준금리가 너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소비나 투자를 위축시키는 기준금리 인상을 멈춰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받는 중이고요.
중앙은행의 변치 않는 대답 ‘2%’
‘대체 금리를 어디까지 올릴 거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연준이 반복해 오던 대답이 있어요. 바로 ‘물가 상승률이 2%까지 낮아질 때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거야’라는 답변이에요.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잡고 있어요. 한국도 마찬가지고요.

매번 반복되는 답변에 이골이 난 걸까요? 최근에는 ‘굳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로 둘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중이에요. 사실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주제거든요.

중앙은행도 왜 하필 목표치가 2%인지에 대해서는 시원한 대답을 내놓진 못해요. ‘사람들은 물가 상승률이 2%면 별 신경을 쓰지 않는데 3% 정도가 되면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 정도의 대답을 하죠.

그러면 왜 하필 2%야?
중앙은행이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미리 제시하고, 이에 맞춰 각종 정책을 펼치는 방식을 ‘물가 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라고 하는데요. 물가 안정 목표제를 처음 도입한 곳은 뉴질랜드예요. 사실 세계 경제를 논할 때 크게 주목하는 나라는 아니죠.

1980년대 후반에 뉴질랜드는 15%까지 치솟은 물가상승률을 잡느라 애를 먹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 당시 뉴질랜드 재무장관이 한 방송 인터뷰에서 ‘물가 상승률을 0~1% 수준으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말했어요.

다음 해인 1990년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2%로 정하겠다’고 공표했어요. 세계 최초로 물가 안정 목표제를 시행한 거죠. 이것도 명확한 기준이 있었던 건 아니고, 재무장관이 제시한 목표치가 너무 낮은 게 아니냐는 지적을 참고해 조금 올려 잡은 수치라고 해요.

이후 캐나다와 영국 등이 2% 물가 안정 목표제를 도입하면서 이 목표치는 각국 중앙은행의 암묵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물론 이들 국가도 2%를 목표치로 잡은 이유를 뒷받침할 만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진 않았어요. ‘과거 추이를 보면 이 정도가 적당하다’라는 식이었죠.

한국은 1998년에 물가 안정 목표제를 도입했어요. 사실 처음엔 목표가 정확히 2%도 아니었어요. 3±0.5%였던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016년에 들어서야 단일 수치인 2%로 수정했죠.

자료=한국은행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은 2012년이 되어서야 2%의 물가 안정 목표제를 도입했어요. 그마저도 2020년에 들어선 목표를 좀 느슨하게 바꿨어요. 매년 정확하게 2%에 도달할 필요 없이 시간이 지나면서 평균적으로 2%에 수렴해도 되도록 조정한 거죠. 이를 두고 ‘애초에 명확한 근거 없이 설정한 목표였으니 뒤늦게 조정한 것 아니야?’라는 해석도 나왔고요.
물가 상승률 목표, 3%면 좀 어때
현재 미국과 한국,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 영국, 일본 등 여러 국가들이 물가 상승 목표치를 2%로 잡고 있는데요. 최근엔 목표치를 3%나 4%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요. 2%를 달성하려고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다가 경제가 침체에 빠지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예전에는 2%를 목표로 하는 게 맞는 것이었다 해도, 요즘엔 고물가가 일상이 됐으니 목표치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에요. 이미 미국에선 여러 경제학자가 물가 목표치 상향을 주장하고 있어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2%에 빨리 도달하려고 하면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죠.

정치인들도 가세했어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속한 집권 여당(민주당)의 로 카나 하원의원은 “물가상승률 2%라는 목표는 과학이 아니고, 연준의 정치적인 판단일 뿐”이라고 지적했어요. 물가 상승률 목표치를 올려서 기준금리를 낮추고 경기를 활성화하는 게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여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연합뉴스]
골이 안 들어간다고 골대를 옮겨?
하지만 연준은 섣불리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바꿔선 안 된다는 입장이에요. 오랜 기간 문제없이 활용된 목표치일뿐더러, 목표를 달성하는 게 어렵다고 목표 자체를 바꿔버리는 게 말이 되냐는 거죠. 한번 목표를 바꾸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연준이 제시하는 목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테고요.

또 중앙은행이 목표치를 높이는 것만으로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도 있어요. 사람들이 ‘앞으로 물가가 더 빠르게 상승하겠네’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할 테니까요. 인건비가 늘어나면 모든 분야에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지죠.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라메시 폰누루는 “연준이 3% 목표를 세운다면 곧 시장에서는 물가상승률이 4%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퍼질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한국은행도 함부로 목표치를 바꾸면 안 된다고 주장해요. 올해 초 기자회견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 목표 수준을 현재 2%에서 올릴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는 “물가상승률이 더디게 떨어진다고 목표 수준을 올리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 같다, 골대로 잘 못 간다고 골대를 옮기자는 얘기다”라고 일축했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선 1년마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학자들이 모여 경제 정책에 관한 토론을 벌이는데요. 지난달 24일에 개최된 올해 잭슨홀 회의에서도 2% 물가상승률 목표치에 대한 주요국 중앙은행의 변함없는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이번 잭슨홀 회의에 참석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바꿀 계획이 없냐는 질문에 “우리는 게임을 하고 있고 거기에는 규칙이 있다”며 “게임 중간에 규칙을 바꾸는 건 안 된다”고 답했어요.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물가 정책목표가 2%라는 점은 변화가 없다”고 잘라 말했죠.

하지만 단기간에 목표치인 2% 물가상승률 달성은 쉽지 않을 듯해요. 당분간 목표치를 둘러싼 논란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상황이 바뀌면 목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와 ‘골이 안 들어간다고 골대를 옮길 순 없다’는 두 주장, 과연 이번 논란은 어떤 결론으로 흘러가게 될까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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