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견문발검] 팜유패밀리 전현무와 박나래가 잘 모르는 이야기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3. 9. 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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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유 중독 어디서 왔나…한국 정부-기업의 생태파괴
지구에서 파괴되는 열대우림 3분의 1이 바로 팜유 때문이다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한국 대기업 때문에 한 나라의 정부가 전복됐다'는 이야기가 사실일까?

“한국의 대기업 대우는 4년 전 마다가스카르에서 농업 용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의 절반을 그야말로 웃음이 나올 만큼 적은 돈을 주고 99년 동안 임차하려 했습니다. 한국으로 수출할 옥수수와 팜유를 재배하기 위해서 말이죠. 이를 위해 대우는 지방 관료들부터 심지어 대통령에게까지 뇌물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한 거래에 관한 정보가 드러나자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를 무너뜨리고 말았죠.”

국내에 번역된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책에 등장하는 단락이다. 기이하게도 당시 이 사태에 대한 언론 논평을 농정신문을 제외하고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놀랍도록 압도적 침묵. 기껏 매일경제와 경향신문 기사가 전부인데, 그것도 기껏 대우의 변명을 그대로 읽어주는 모양새였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발렌틴 투른·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 저, 이미옥 번역, 에코리브르 출판.

대우의 마다가스카르 경작지 절반 임대계약 폭로한 FT
국제 토지수탈 일깨우며 정부 전복으로 이어져

2008년 영국 일간지 '파이내셜타임즈'는 대우 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 경작지의 절반에 해당되는 130만 헥타르의 토지를 99년 임대 계약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링크). 그 면적이 얼마냐 넓으냐면, 한국 농지의 70%에 해당되며 벨기에 면적의 절반이다. 이는 역사상 가장 큰 임대 계약이다.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투자를 약속 받고 라발로마나나 정부가 대우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마다가스카르의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들은 마구잡이로 사회적 자원을 민영화하고 있었다.

이 커넥션이 드러나자 당장 마다가스카르가 들끓었다. 곧바로 '마다가스카르 국토 수호 동맹(TANY)'이 결성되고, 마다가스카르에서 가장 큰 도시의 시장이 대통령과 대우를 비난하며 대규모 집회들을 조직했다. 여러 정치적 불만들이 쏟아졌다. 나중에는 쿠데타 시도로까지 확대되었다. 상점과 거리가 불타오르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극렬한 소요 끝에 대통령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도망치며 급기야 정부가 전복됐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 갈무리. 파이낸셜타임스는“한국의 대우로지스틱스가 벨기에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옥수수와 팜유를 재배하는 데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이러한 종류의 최대 농지 투자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곧장 전 세계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투기 금융자본과 아시아 국가 들이 2007년 금융과 식량 위기가 터지자 아프리카로 몰려가 닥치는 대로 토착민의 토지를 선점하느라 각축전을 벌이던 터였다. 식량과 바이오연료라는 녹색 노다지를 캐기 위해서였다. 2008년 마다가스카르 사태는 아프리카 토지에 대한 신식민지적 약탈의 정점으로 평가됐다. 단지 당사국인 한국만 짝소리 없이 조용했고, 지금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다. 해외농지 확보에 열을 올리던 당시 이명박 정부뿐 아니라 언론과 시민사회 단체도 쥐 죽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대우그룹은 마다가스카르의 초원 지역 100만 헥타르에 옥수수를 심고, 또 30만 헥타르의 열대우림을 쓸어내고 팜유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식량 확보 차원이라고 주장했지만 동물 사료와 바이오연료가 주목적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팜유'를 눈여겨봐야 한다. 대우가 포스코에 합병되고 '포스코인터내셔널'로 덩치를 키운 이후에도 팜유에 대한 그 끈질긴 집념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로 합병되고도 이어지는 팜유 '집착' 왜?

▲부당부채폐지위원회 웹사이트 게시글 갈무리. GRAIN은 이 글에서대우 사태가 마다가스카르 정부 전복으로 이어졌고, 농업 생산을 위한 전 세계적인 토지 수탈이라는 터무니없는 새 흐름에 전 세계를 일깨웠다고 밝혔다.

주 무대를 인도네시아로 옮긴 포스코인터내셔널. 자회사 'PT.Bio Inti Agrindo(PT BIA)'를 통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축구장 3만 7000개 이상의 면적인 2만 6500 헥타르의 삼림을 파괴하고 그 땅에 거주하던 토착민의 권리를 침해하며 세계적인 악명을 떨쳤다. 팜유 농장을 짓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러 열대우림을 태웠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보안 요원들이 토착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놀랍게도 한국의 산림청과 농림축산식품부는 포스코인터내셔널에 각각 49억 원과 381억 원의 융자 지원을 하며 이 파괴적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심지어 현재에도 마다카스카르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해 자회사 'PT BIA'를 통해 관련 네트워크를 계속 구성하고 있다. 2016년 한국 정부가 마다가스카르에 대사관을 처음 개관했는데, 마다가스카르 국토 수호 동맹(TANY) 측은 한국 정부와 포스코인터내셔널이 2008년의 계획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것으로 판단해 즉각 경계했다. 한국 대사관에 당시의 '뇌물'의 실체를 묻는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 기업들의 팜유 집착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코린도 기업은 3만 헥타르의 천연림을 파괴한 댓가로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회원 자격을 박탈당하며 최악의 팜유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물산도 대규모 화재를 일으키고 환경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180억의 벌금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1심 벌금 판결에 삼성물산 측과 인도네시아 검찰 모두 항소했다. 법원은 '팜농장 인수 당시 현지 주민들이 과거법제에 따라 토지소유권을 부정하며 배타적으로 거주 점유하던 지역이어서 발생 화제에 대해 삼성물산은 본질적으로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2022년 9월 13일 인도네시아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삼성물산, 대상주식회사, 제이씨케미칼, LX인터내셔널 이렇게 5개 대기업의 인도네시아 팜유 농장은 자그마치 11만 헥타르, 축구장 15만 개의 면적이다. 벌채, 방화, 생물다양성 파괴, 토지 분쟁, 노동 착취, 토착민 인권 유린 등 어느 기업도 지속가능한 팜유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들 기업을 위해 약 800억 이상의 융자를 지원해줬다.

▲팜 농장에서 팜 열매가 쌓여있는 모습. 사진=Pixabay

무엇이 이토록 한국을 팜유 중독에 빠지게 한 걸까? 기름야자 열매에서 추출하는 팜유는 식용유와 비누는 물론 산업 공정의 윤활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2000년대 중반, 바이오연료를 재생에너지로 규정하고 연료 혼합을 의무화하면서 관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옥수수, 사탕무, 유채, 팜유 등을 가공해 바이오연료로 전환하는데 한국의 경우 바이오연료의 55% 이상이 바로 팜유와 팜 부산물이다. 2014년 27만 4200톤이었던 수입량이 2021년 58만 2100톤으로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재생에너지 가중치를 적용 받아 국가 보조금을 받는 동시에 수송용과 발전용으로 팔아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절반 이상이 에탄올로 가공돼 자동차로 들어가는 동안, 6초마다 배고픈 남반구 아이들이 굶어 죽는다. 더군다나 바이오연료는 곡물 가격 상승을 유인함으로써 세계 식량위기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꼽힌다. 바이오연료는 그렇게 비윤리적이다. 또 열대우림을 남벌하고 생물다양성과 토착민의 권리를 훼손하는 팜 바이오연료는 전혀 기후친화적이지 않다. 팜유 1톤을 생산할 때 석유보다 10배 더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심지어 원시림 토양 훼손으로 발생한 폐기 가스를 상쇄하려면 최대 423년이 소요된다. 국내 팜유 업체들은 삼림 벌채는 '옛말'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도 생물다양성이 집적된 인도네시아 오지 지역의 벌채는 외려 증가 추세다. 현재 이 시각, 전 지구에서 파괴되는 열대우림 3분의 1이 바로 팜유 때문이다.

▲MBC '나혼자산다' 방송화면

유럽연합은 최근 삼림 훼손과 인권 문제 때문에 아예 팜유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유럽 내 다른 바이오연료 시장을 방어하려는 꼼수가 그 배경이지만, 어쨌든 팜유가 행성 한계를 위협하는 치명적 오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기업은 여봐란 듯 공적 자금으로 잔치를 벌이며 항공유 등 팜유 산업을 더욱 확장하고 있다. 그 탐욕이 끝이 없다. '팜유'는 소비 진작과 이윤 축적을 위해 생태 파괴를 일삼고 아시아-아프리카의 토지를 약탈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지독한 아이콘일 것이다.

팜유라는 상품의 사슬 끝엔 그렇게 슬픈 열대가 숨겨져 있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연예인들이 '팜유 패밀리'를 꾸리고 서로 두툼한 아랫배를 자랑스레 들춰가며 말끝마다 팜유, 팜유 떠드는 걸 볼 적마다 문득, 자괴감과 서글픔이 몰려오곤 한다. 그래, 아마 저 흥청망청은 우리의 무관심과 묵인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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