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마약과의 전쟁" 주문에도 기재부 지원 예산 '뚝'[김용훈의 먹고사니즘]
작년 마약사범 1만8000여명 '역대최대'…지원은 165명 한 달 입원치료비 수준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올해 말까지 병원 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수도권 최대(지정병상 수 기준) 마약류 중독 치료보호기관인 인천 참사랑병원 천영훈 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10월 말쯤 기자회견을 열고 폐업 관련 소회를 밝히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검찰청이 지난 7월 발간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참사랑병원은 지난해 전국의 치료보호기관 21곳 가운데 가장 많은 치료보호 실적(276명)을 기록한 병원입니다.
그런데 왜 폐업하려고 할까요. 마약류 중독 환자 치료는 어렵지만 보상을 제고할 길이 없다는 점이 참사랑병원 폐업의 구조적 배경입니다. 참사랑병원의 한 직원은 “치료비를 받긴커녕 돈을 들여가며 생고생을 해온 셈”이라고 하소연했다고 하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마약류 중독자는 하루속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치료·재활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범정부의 역량을 총결집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죠.
대통령이 이렇게 지시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2022년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역대 최다인 1만8395명이나 됩니다.
하지만 올해 마약 치료보호기관 지원에 책정된 예산은 8억2000만원(국비·지방비 각 4억1000만원)이 전부입니다. 인천참사랑병원과 같은 기관들의 재정난을 돕기엔 역부족입니다. 환자 165명 정도가 한 달 입원치료를 받는 데 드는 비용밖에 안 되는데 마약사범 수가 급증하는 최근 추세를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죠.
이러다보니 전국에서 운영되는 기관이 24개소인데 실제로 치료 실적이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당시 운영되던 19개 치료보호기관 중 국립부곡병원과 인천참사랑병원 등 2곳이 치료보호 실적의 97%를 차지합니다. 사실상 전국에서 국립병원 1곳과 민간 병원 1곳이 전담하는 셈입니다. 마약류 중독 환자는 치료는 어렵지만 의료기관이 받는 보상이 적고 업무난에 인력 유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마약류 중독 외 증상의 환자들이 입원을 꺼리는 문제도 있죠.
이 가운데 마약사범이 급증하는데도 내년 정부 예산안에 마약 치료보호기관 지원 예산이 동결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기존 예산의 2배 이상을 증액하려고 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정부 내 논의 과정에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는 내년도 예산 요청안에 관련 예산을 24억원(지방비 포함) 수준으로 올리는 내용을 넣었지만, 기재부가 제동을 걸면서 정부 예산안에는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범정부의 역량을 총결집하겠다”는 윤 대통령 지시를 기재부가 우습게 생각한 걸까요.
복지부는 마약중독 환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해 치료 지원과 관련한 기존 예산을 크게 늘리는 한편 일정 규모 이상 치료 실적이 있는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었습니다. 또 환자에 대한 사후 관리 비용을 지원하고 종사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지원도 신설할 방침이었죠.
그러나 정부 내 논의 과정에서 재정완화(건전재정) 기조에 따라 새로운 지원책과 관련한 예산은 편성되지 못했고, 치료 지원 예산만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편성됐습니다.
복지부는 정부가 펴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치료 관련 지원 예산 확대가 중요하다고 보고 국회 논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만, 글쎄요. 기대해도 될까요?
※[김용훈의 먹고사니즘]은 김용훈 기자가 정책 수용자의 입장에서 고용노동·보건복지·환경정책에 대해 논하는 연재물입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아쉬움이나 부족함이 느껴질 때면 언제든 제보(fact0514@heraldcorp.com) 주세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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