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아직 모른다”
손동환 2023. 9. 3. 11:08
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3년 8월호에 게재됐다. 인터뷰는 7월 21일 오후에 이뤄졌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대구 한국가스공사 프로농구단은 인천 전자랜드 시절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2022~2023시즌에는 그런 컬러를 잃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기에, 특유의 컬러가 빠진 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게다가 주축 전력을 FA(자유계약) 과정에서 잃었다. 한국가스공사를 향한 평가는 더 야박해졌다. 그러나 신임 사령탑인 강혁 감독직무대행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모른다”에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대구 한국가스공사 프로농구단은 인천 전자랜드 시절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팀이었다. 그러나 2022~2023시즌에는 그런 컬러를 잃었다. 우승 후보로 꼽혔기에, 특유의 컬러가 빠진 건 더 뼈아프게 다가왔다.
게다가 주축 전력을 FA(자유계약) 과정에서 잃었다. 한국가스공사를 향한 평가는 더 야박해졌다. 그러나 신임 사령탑인 강혁 감독직무대행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아직 모른다”에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인연의 시작점
‘선수 강혁’은 1999년 3월 16일에 열린 199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조상현(현 창원 LG 감독)과 조우현, 황성인(현 단국대 코치)과 김성철(전 원주 DB 코치) 다음으로, 프로에 입성했다.
강혁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2대2를 잘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2대2에 필요한 패스와 농구 센스, 슈팅 능력 모두 뛰어났다. 2005~2006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함께, FINAL MVP를 받기도 했다.
강혁은 삼성의 상징과 같은 선수였다. 그러나 2010~2011시즌 종료 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로 트레이드됐다. ‘원 클럽 플레이어’로 KBL 역사에 남을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를 놓고 보면, 전화위복이었다. ‘인연의 시작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삼성에서 전자랜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습니다.
상무를 포함하면, 12년 동안 함께 했던 팀입니다. 우승도 했고, 많은 걸 이룬 팀이었죠. 하지만 그런 삼성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운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운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 마음 때문에, 운동을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가족들에게도 “이제 그만하겠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전자랜드로부터 연락을 받았죠.
소속 팀은 달라졌지만, 클래스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혁은 2011~2012시즌 정규리그 52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21분 50초 출전에, 평균 6.5점 2.7어시스트 1.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프로 선수는 매번 승부를 보는 직업입니다. 삼성에서도 승패에 집중했죠. 전자랜드에 오고 나서야, ‘즐기면서 하자. 다만, 주어진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그래서 정말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농구를 보는 시야도 더 넓어졌고요.
2012~2013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습니다. 삼성이 아닌 전자랜드였기에,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데뷔한 팀에서 은퇴하는 걸 꿈꿉니다. 저 역시 그런 꿈을 꿨고,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의 마지막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쉬웠어요.
그렇지만 제가 삼성에만 있었다면, 전자랜드에 계셨던 좋은 분들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죠. 전자랜드에서도 프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선수 강혁’은 1999년 3월 16일에 열린 1999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수원 삼성(현 서울 삼성)에 입단했다. 조상현(현 창원 LG 감독)과 조우현, 황성인(현 단국대 코치)과 김성철(전 원주 DB 코치) 다음으로, 프로에 입성했다.
강혁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 2대2를 잘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2대2에 필요한 패스와 농구 센스, 슈팅 능력 모두 뛰어났다. 2005~2006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함께, FINAL MVP를 받기도 했다.
강혁은 삼성의 상징과 같은 선수였다. 그러나 2010~2011시즌 종료 후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로 트레이드됐다. ‘원 클럽 플레이어’로 KBL 역사에 남을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를 놓고 보면, 전화위복이었다. ‘인연의 시작점’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2011년 여름. 삼성에서 전자랜드로 유니폼을 갈아입었습니다.
상무를 포함하면, 12년 동안 함께 했던 팀입니다. 우승도 했고, 많은 걸 이룬 팀이었죠. 하지만 그런 삼성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서운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서운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 마음 때문에, 운동을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가족들에게도 “이제 그만하겠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전자랜드로부터 연락을 받았죠.
소속 팀은 달라졌지만, 클래스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혁은 2011~2012시즌 정규리그 52경기에 나섰다. 경기당 21분 50초 출전에, 평균 6.5점 2.7어시스트 1.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프로 선수는 매번 승부를 보는 직업입니다. 삼성에서도 승패에 집중했죠. 전자랜드에 오고 나서야, ‘즐기면서 하자. 다만, 주어진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바꿔먹었어요. 그래서 정말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농구를 보는 시야도 더 넓어졌고요.
2012~2013시즌 종료 후 은퇴하셨습니다. 삼성이 아닌 전자랜드였기에,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데뷔한 팀에서 은퇴하는 걸 꿈꿉니다. 저 역시 그런 꿈을 꿨고, 그게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저의 마지막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너무 아쉬웠어요.
그렇지만 제가 삼성에만 있었다면, 전자랜드에 계셨던 좋은 분들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죠. 전자랜드에서도 프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제2의 인생
강혁은 은퇴 후 삼일상고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모교 후배를 양성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송교창(국군체육부대)과 양준우(대구 한국가스공사), 하윤기(수원 KT)와 이현중(NBA G리그 필라델피아 소속) 등 많은 제자들이 자신의 손에서 배출됐다.
2017~2018시즌부터 프로 팀의 코치로 활약했다. 창원 LG 소속으로 3년 동안 프로 선수들을 지도했고, 2020~2021시즌부터는 선수 생활 마지막을 함께 했던 전자랜드의 코치를 맡았다. 한국가스공사가 전자랜드 농구단을 인수한 이후에도, 강혁은 코치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2013년부터 삼일상고 코치를 맡았습니다.
2012~2013시즌에 발목 부상을 입었습니다. 퍼포먼스도 좋지 않았죠. 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래저래 힘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내가 선수를 더 해야 하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은사님이신 이윤환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모교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면 어떻겠어?”라고 권유하시더라고요.
고민 끝에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시즌 중에 은퇴를 결심했죠. 그리고 이윤환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가능성 풍부한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능성 풍부한 친구는 누구였나요?
(송)교창이었습니다.(웃음) 사실 그 때만 해도, 교창이의 존재를 몰랐어요. 연습 경기 때도 대학교 선수들이나 보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볼 일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교창이를 직접 보니, 다른 학생 선수들과는 달랐습니다. 어린 선수지만,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했죠. 성장하는 걸 보니, 더 뿌듯하기도 했고요.
뿌듯함도 크겠지만, 학교 농구부 코치는 많은 걸 신경써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르치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해보고 싶었던 농구와 선수의 특성에 맞는 농구를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었거든요. 또, 선수들이 저를 잘 따라줘서, 즐거운 마음이 더 컸어요.
그렇지만 대학 진학과 스카우트 등 외부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외부 요소와 관련된 일을 할 때마다, 큰 벽에 부딪힌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은 정말 행복한 거였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저의 지도자 생활에 큰 힘이 됐습니다. 좋은 경험이었던 거죠.
2017~2018시즌부터 창원 LG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학교에서 퇴근을 하는데, 현주엽 감독님의 부임 기사를 접했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현주엽 감독님과 알고 지냈기에, 아내한테 “나한테도 연락 오는 거 아냐?”라는 빈말을 했습니다. 근데 다음 날 진짜 현주엽 감독님한테 연락을 받았어요.(웃음)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바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를 믿고 삼일상고에 오는 학생들도 있고, 저를 믿고 학생들을 보내주는 학부모님들도 계셨거든요. 그렇지만 다들 “좋은 자리가 났는데, 그 곳에 가는 게 맞지 않냐?”라며 제 상황을 이해해주셨습니다.
학생 선수들을 가르쳐봤고, 프로 선수들도 지도해봤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학생 선수들은 운동 가치관을 잡아줘야 한다면, 프로 선수들은 자기 가치관을 어느 정도 갖고 있습니다. 반면, 프로 선수들은 안 좋은 습관이 깊이 배어있다면, 학생 선수들은 안 좋은 습관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일장일단이라기보다, 그런 차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2020~2021시즌부터 전자랜드 코치를 맡으셨습니다.
LG와 계약 기간이 끝난 후, 한 달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유도훈 감독님께서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연락 주셨어요. 제가 어려울 때, 저를 찾아주셨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어려울 때마다 저를 챙겨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전자랜드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농구인의 길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강혁은 은퇴 후 삼일상고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모교 후배를 양성하는데 집중했다. 그 결과, 송교창(국군체육부대)과 양준우(대구 한국가스공사), 하윤기(수원 KT)와 이현중(NBA G리그 필라델피아 소속) 등 많은 제자들이 자신의 손에서 배출됐다.
2017~2018시즌부터 프로 팀의 코치로 활약했다. 창원 LG 소속으로 3년 동안 프로 선수들을 지도했고, 2020~2021시즌부터는 선수 생활 마지막을 함께 했던 전자랜드의 코치를 맡았다. 한국가스공사가 전자랜드 농구단을 인수한 이후에도, 강혁은 코치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2013년부터 삼일상고 코치를 맡았습니다.
2012~2013시즌에 발목 부상을 입었습니다. 퍼포먼스도 좋지 않았죠. 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래저래 힘들었어요.
그런 이유로, ‘내가 선수를 더 해야 하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 은사님이신 이윤환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어요. “모교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면 어떻겠어?”라고 권유하시더라고요.
고민 끝에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시즌 중에 은퇴를 결심했죠. 그리고 이윤환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가능성 풍부한 친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능성 풍부한 친구는 누구였나요?
(송)교창이었습니다.(웃음) 사실 그 때만 해도, 교창이의 존재를 몰랐어요. 연습 경기 때도 대학교 선수들이나 보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을 볼 일은 거의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교창이를 직접 보니, 다른 학생 선수들과는 달랐습니다. 어린 선수지만, 더 잘 될 거라고 생각했죠. 성장하는 걸 보니, 더 뿌듯하기도 했고요.
뿌듯함도 크겠지만, 학교 농구부 코치는 많은 걸 신경써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가르치는 일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해보고 싶었던 농구와 선수의 특성에 맞는 농구를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었거든요. 또, 선수들이 저를 잘 따라줘서, 즐거운 마음이 더 컸어요.
그렇지만 대학 진학과 스카우트 등 외부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외부 요소와 관련된 일을 할 때마다, 큰 벽에 부딪힌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왔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선수 생활은 정말 행복한 거였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저의 지도자 생활에 큰 힘이 됐습니다. 좋은 경험이었던 거죠.
2017~2018시즌부터 창원 LG의 코치를 맡았습니다.
학교에서 퇴근을 하는데, 현주엽 감독님의 부임 기사를 접했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현주엽 감독님과 알고 지냈기에, 아내한테 “나한테도 연락 오는 거 아냐?”라는 빈말을 했습니다. 근데 다음 날 진짜 현주엽 감독님한테 연락을 받았어요.(웃음)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같이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렇지만 바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를 믿고 삼일상고에 오는 학생들도 있고, 저를 믿고 학생들을 보내주는 학부모님들도 계셨거든요. 그렇지만 다들 “좋은 자리가 났는데, 그 곳에 가는 게 맞지 않냐?”라며 제 상황을 이해해주셨습니다.
학생 선수들을 가르쳐봤고, 프로 선수들도 지도해봤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던가요?
학생 선수들은 운동 가치관을 잡아줘야 한다면, 프로 선수들은 자기 가치관을 어느 정도 갖고 있습니다. 반면, 프로 선수들은 안 좋은 습관이 깊이 배어있다면, 학생 선수들은 안 좋은 습관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일장일단이라기보다, 그런 차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2020~2021시즌부터 전자랜드 코치를 맡으셨습니다.
LG와 계약 기간이 끝난 후, 한 달 정도의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유도훈 감독님께서 “같이 한 번 해보자”고 연락 주셨어요. 제가 어려울 때, 저를 찾아주셨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어려울 때마다 저를 챙겨주셨기에, 감사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전자랜드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농구인의 길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시방석
‘코치 강혁’의 소속 팀인 대구 한국가스공사는 2022~2023시즌 우승 후보로 꼽혔다. 이대성(일본 B리그 시호스즈)과 SJ 벨란겔, 정효근(안양 KGC인삼공사)과 이대헌 등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2022~2023시즌 종료 후 팀을 오랜 시간 이끌었던 유도훈 감독과 계약 해지했다. 김승환 수석코치 역시 옷을 벗었다. 막내 코치였던 강혁은 가시방석에 앉아야 했다.
한국가스공사가 2022년 여름에 전력을 알차게 보강했습니다. 코치로서 기대했던 것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대성이가 새롭게 합류했고, (정)효근이도 부상에서 돌아왔습니다. 주위에서 “우승할 수 있는 멤버”라고 해줬고, 저도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가스공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팀에서 원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개성과 강점이 한 곳으로 모이면 강해지는데, 1~2명이라도 그렇지 못한 팀은 강해질 수 없어요. 저희 팀은 선수들의 좋은 점을 하나로 만들지 못했고, 그래서 주변의 기대와 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던 것 같아요.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선수들끼리 잘 뭉치고, 선수들끼리 잘 믿어야 해요. 그래야 상대를 이길 수 있고, 그런 게 반복돼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농구가 팀워크 싸움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유도훈 감독님과 김승환 수석코치님이 옷을 벗었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질문을 들은 강혁 감독대행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분에게는 죄송한 마음 밖에 없어요.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코치 강혁’의 소속 팀인 대구 한국가스공사는 2022~2023시즌 우승 후보로 꼽혔다. 이대성(일본 B리그 시호스즈)과 SJ 벨란겔, 정효근(안양 KGC인삼공사)과 이대헌 등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다. 2022~2023시즌 종료 후 팀을 오랜 시간 이끌었던 유도훈 감독과 계약 해지했다. 김승환 수석코치 역시 옷을 벗었다. 막내 코치였던 강혁은 가시방석에 앉아야 했다.
한국가스공사가 2022년 여름에 전력을 알차게 보강했습니다. 코치로서 기대했던 것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대성이가 새롭게 합류했고, (정)효근이도 부상에서 돌아왔습니다. 주위에서 “우승할 수 있는 멤버”라고 해줬고, 저도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가스공사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습니다.
선수들의 개인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팀에서 원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선수들의 개성과 강점이 한 곳으로 모이면 강해지는데, 1~2명이라도 그렇지 못한 팀은 강해질 수 없어요. 저희 팀은 선수들의 좋은 점을 하나로 만들지 못했고, 그래서 주변의 기대와 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던 것 같아요.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선수들끼리 잘 뭉치고, 선수들끼리 잘 믿어야 해요. 그래야 상대를 이길 수 있고, 그런 게 반복돼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농구가 팀워크 싸움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유도훈 감독님과 김승환 수석코치님이 옷을 벗었습니다. 마음이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질문을 들은 강혁 감독대행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두 분에게는 죄송한 마음 밖에 없어요. 죄송스러운 마음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했습니다.
“아직 모른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유도훈 감독과 김승환 수석코치가 물러났다. 한국가스공사는 막내 코치였던 강혁에게 ‘감독직무대행’이라는 직책을 줬다. 간단히 말해, 강혁이 한국가스공사의 신임 사령탑이 된 것.
감독직무대행이기는 하지만, 강혁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팀의 수장으로서 모든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부진했던 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그래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그의 어조는 무척 진중했다. 특히, “아직 모른다”는 말에서 진중함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감독직무대행이 됐습니다.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엇이었나요?
선수단 분위기와 선수들이 가진 생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활기차게 바꾸고 싶었죠.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고요.
그리고 팀의 핵심이었던 이대성과 정효근이 한꺼번에 이탈했습니다. ‘한국가스공사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안 되더라도, 노력해서 바꿔보자. 노력을 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겠느냐?”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주장인 차바위와 고참들이 좋은 분위기의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운동 분위기를 누구보다 활발히 조성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선수들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긍정적입니다. 다만,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가스공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지난 시즌에는 초반부터 많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즌 후반까지 어려운 경기를 했죠. 그래서 시즌 초반에 모든 걸 쏟으려고 합니다. 시즌 초반부터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해야, 좋은 분위기를 유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수비부터 해야 해요. 지난 시즌에는 약속된 수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선수들과 수비를 많이 연습하고 있습니다. 함정수비와 로테이션 수비, 2대2 수비 등 팀 수비력 향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정돈된 공격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공을 많이 해야 합니다. SJ 벨란겔의 강점이 속공이기도 하고, 새롭게 선발한 외국 선수(아이재아 힉스-앤서니 모스) 모두 달릴 수 있습니다. ‘강한 수비’와 ‘달리는 농구’로 시즌 초반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한국가스공사의 컬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모든 팀이 수비를 먼저 주문합니다. 수비를 해야, 팀이 끈끈해질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수비를 바탕으로 한 끈끈한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수비부터 한다면, 선수들이 화려한 농구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끈끈한 틀을 오랜 시간 유지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팀이 되면 안 돼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높은 곳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한국가스공사=전통의 강호’라는 인식이 들게끔, 탄탄한 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
위에서 이야기했듯, 유도훈 감독과 김승환 수석코치가 물러났다. 한국가스공사는 막내 코치였던 강혁에게 ‘감독직무대행’이라는 직책을 줬다. 간단히 말해, 강혁이 한국가스공사의 신임 사령탑이 된 것.
감독직무대행이기는 하지만, 강혁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팀의 수장으로서 모든 선택과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부진했던 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 그래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그의 어조는 무척 진중했다. 특히, “아직 모른다”는 말에서 진중함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다.
감독직무대행이 됐습니다.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무엇이었나요?
선수단 분위기와 선수들이 가진 생각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활기차게 바꾸고 싶었죠.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었고요.
그리고 팀의 핵심이었던 이대성과 정효근이 한꺼번에 이탈했습니다. ‘한국가스공사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른다. 안 되더라도, 노력해서 바꿔보자. 노력을 한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지 않겠느냐?”고 선수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주장인 차바위와 고참들이 좋은 분위기의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운동 분위기를 누구보다 활발히 조성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다른 선수들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긍정적입니다. 다만,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한국가스공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지난 시즌에는 초반부터 많이 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즌 후반까지 어려운 경기를 했죠. 그래서 시즌 초반에 모든 걸 쏟으려고 합니다. 시즌 초반부터 이기는 경기를 많이 해야, 좋은 분위기를 유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수비부터 해야 해요. 지난 시즌에는 약속된 수비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선수들과 수비를 많이 연습하고 있습니다. 함정수비와 로테이션 수비, 2대2 수비 등 팀 수비력 향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난 시즌에는 정돈된 공격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속공을 많이 해야 합니다. SJ 벨란겔의 강점이 속공이기도 하고, 새롭게 선발한 외국 선수(아이재아 힉스-앤서니 모스) 모두 달릴 수 있습니다. ‘강한 수비’와 ‘달리는 농구’로 시즌 초반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합니다.
한국가스공사의 컬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모든 팀이 수비를 먼저 주문합니다. 수비를 해야, 팀이 끈끈해질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수비를 바탕으로 한 끈끈한 팀을 만들고 싶습니다. 수비부터 한다면, 선수들이 화려한 농구도 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끈끈한 틀을 오랜 시간 유지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팀이 되면 안 돼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높은 곳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한국가스공사=전통의 강호’라는 인식이 들게끔, 탄탄한 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 정승환 작가
사진 제공 = KBL
Copyright © 바스켓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바스켓코리아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